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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13. 2024

얼떨결에 시작해 버린 시험관 2차

이 선택 잘한 일인 걸까

어떤 선택이 최선일지 끝에 보일 답을 모르니 나는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한방으로 해보는 건 어때."

"지금 나한테는 그것도 괜찮지."


몸과 정신이 지쳐버렸을 때라 남편은 넌지시 한방 쪽으로 방향을 바꾸길 원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좋은 배아 등급이라도, 내가 최적의 상태라도 착상과 임신의 성공은 무조건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원인도 모른 채 시험관을 이어간다는 건 소중한 배아를 빈 껍데기에 넣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마치 넓은 늪지에서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진주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확률은 말 그대로 확률이었다. 배아의 등급이 성공의 주를 이룬다고 해도 결국은 착상이 중요하니 나는 내 몸부터 챙기는 게 맞았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수치가 정상이라도 내가 아직 임신을 하기엔 덜 된 몸일 수도 있으니까.


"제부 말처럼 쉬면서 한약 먹고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좋을 거 같아."

"운동도 해야 돼. 운동을 해야 몸이 건강해."

"난임 한방 지원도 해준다는데 알아봐 봐."


언니와 형부, 남편까지 나를 위로해 주면서 모두가 내 몸을 먼저 걱정했다. 어쩌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영양제를 먹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한들 몇십 년을 원래의 습관대로 살았는데 몇 달 고친다고 이미 자리 잡은 몸이 금세 맞춰지진 않을 테니까.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 시작한 시험관이라 생각은 더욱 많아졌다.


한방 지원을 알아보니 총 4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한약만 지원해 주는데 부부가 같이 먹을 수 있고 침치료는 사비로 동반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보건소에 전화해 자세히 물어보니 조건은 가능하나 양방 지원은 동시에 받을 수 없고 무조건 4개월을 지켜야만 다른 걸 할 수 있다고 했다.


"생각은 해봤어?"

"아직. 내 몸 생각하면 한약이 맞는데 4개월 동안 다른 시도는 못 한다고 하니까 결정이 어렵네."


시험관은 할수록 확률이 높아진다는데 2차 도전을 한다고 해도 또 수치가 안 나오면 어떡하지. 한방 치료를 받으면 자연 임신으로 시도를 할 수 있는데 그게 나은 걸까. 뭘 해도 정답은 볼 수 없는 일이고 몸도 보호할 겸 한약을 먹는다고 해도 임신 성공을 장담하기가 어렵기에 어느 하나도 생각이 치우쳐지지 않았다.


내 선택을 존중한다는 남편의 말에도 나는 어떠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후회하지 않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길이 막힌 느낌이었다. 도움이야 다 되겠지만 양방과 한방은 엄연히 결이 다르니 아예 쉬면 모를까 한방을 하는 동안 난임센터 병행은 안된다니 그게 마음에 걸렸다. 


"일단 서류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병원에 다녀와. 이번달은 쉬는 게 맞는 거 같아."

"응, 그러자."


한방 지원을 받기 위해선 꽤 많은 서류가 필요했고 그걸 받으려면 난임센터에 가야 했다. 이번엔 쉰다는 생각을 하고 생리 삼일째가 되는 날, 난임센터에 간 나는 뭐가 뭔지 몰라 사진을 찍어놓은 걸 보여주었다. 기본 피검사와 난임을 확인하기 위한 진단서 등이 필요하다는데 여기서 문제는 검사 기간이었다.


남편은 6개월 이내 정액 검사 결과지를, 나는 3개월 이내로 한 검사 결과지가 필요했다. 원장님 옆에서 서포트를 해주시는 선생님이 확인을 해주셨지만 두 개의 항목 말고는 재검사를 해야 했고 비용도 내가 요청을 하는 거라 비급여로 청구된다며 10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남편과 통화로 상의를 했지만 어차피 한방 지원을 받으려면 서류는 필요했기에 나는 피검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접수된 내 이름이 이내 불려지고 서류만 떼려던 나는 뜻하지 않게 원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시험관을 하려고 온 걸로 생각하는 원장님과 서류만 떼려고 온 나는 서로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았다.


"생리해서 오신 거죠?"

"아, 오늘은 서류만 떼러 왔어요."

"서류? 어디에 필요한 건데요?"

"난임 한방 지원 있다고 해서 해보려고요."

"한방? 그거 먹는다고 임신이 된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리고 4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해, 괜찮아요?"


왜인지 모르게 원장님 앞에선 말이 단단하게 나오지 않았다. 말끝을 흐리는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힘이 실려있다고 해야 하나. 한방 소리를 듣자마자 원장님은 목소릴 높이며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마 양방에선 한방을 그리 믿음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놀라진 않았다. 워낙 알고 있는 반응이니까.


"인공수정부터 시험관까지 계속 수치가 0인데 제 몸이 준비가 안된 것 같아서요."

"인공수정은 확률이 거의 없다고 봐서 더하면 안 돼요. 지금은 시험관 한 번만 한 거야."

"혈액 순환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혈액 순환은 운동을 해요. 한약 먹지 말고 운동을 하면 원활해져."

"아, 네."


무언가 위축된 상태로 원장님을 마주하니 머릿속에 오류가 생긴 것처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서류를 떼러 온 건가, 한 소리를 들으려고 온 건가. 남편과 나눈 얘기가 있기에 서류 얘기를 자신 있게 꺼내야 했지만 원장님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나는 혼동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물론 한약이 도움은 되겠지만 시험관도 그렇고 한방을 한다고 해서 임신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네."

"다만 시험관은 2차부터 착상이 실패했을 때 검사를 해볼 수 있어요. 3차에도 할 수 있는 검사가 있고.

"그래요?"

"시험관이 확률이 있다고 해도 한 번에 되긴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2차 이후는 검사를 하는데 원인을 알 수도 있으니까 더 낫죠."


주술을 부리는 것처럼 휘어잡듯이 얘기를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뱉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뭘 하든 임신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는데 시험관을 하면 검사라도 할 수 있으니 혹할 일이었다. 그것도 무조건 원인이 나온다는 장담은 없지만 그럼에도 한방에선 못하는 거라 조금씩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생리는 했어요?"

"네, 오늘 삼일째예요."

"딱 맞네, 들어가요. 초음파 봅시다."

"네? 네."


후다닥 진행이 되는 것처럼 얼떨결에 초음파를 보러 들어간 나는 생각지도 못한 시험관 2차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정해놓은 우리의 계획은 우수수 틀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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