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허나 꽤 오랜 기간 그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종종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보며 질투합니다.
이 글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잘나 보이는 그들을 깎아내리며 자존감을 지키던 때부터
질투를 축복이라 말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요.
질투를 대하는 자세
우리는 말 그대로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 스마트폰, SNS 이 모든 것들로 말이죠.
이는 그 어느 때보다 남과 나를 비교하기 쉬운 환경임을 뜻합니다.
비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비교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문제를 만들곤 합니다.
교토 의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질투를 느낄 때 고통을 느낄 때와 같은 뇌의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뇌는 고통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반응합니다.
방어기제를 보이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요.
그런데 이러한 행동은 나의 자존감을 지키겠지만
성장의 측면에서 봤을 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을 성장포인트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어떻게 질투를 가지고 성장할 수 있냐고요?
지금부터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질투의 배경
우리가 질투할 때 그 바탕에는 결핍이 있습니다.
그리고 글의 서두에 언급된 상황으로 잠시 돌아가보겠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목표를 이뤄낸 사람들을 보며 질투를 느끼는 상황이죠.
여기서 질투의 바탕이 되는 결핍은,
그들이 이룬 것을 나는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만일, 그들이 이룬 것을 나 역시 이룰 수 있음을 안다면?
그러면 어떨까요?
정반대의 마음 상태가 될 것입니다.
결핍은 눈 녹듯 사라지고
오히려 먼저 이룬 그들을 축하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됩니다.
즉, 내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결핍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없다는 믿음이 그런 결핍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결핍을 알게 된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 이유를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결핍이 드러나다
우리의 의식은 곧 현실을 창조합니다.
의식을 큰 주머니라고 치면,
이안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가 곧 현실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마치 이 의식을 돋보기로 비추어서
좋은 것은 남겨두고,
안 좋은 것들만 속속들이 골라내어 없애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의식은 너무도 미스터리합니다.
표면에 드러난 부분은 5%에 불과하니까요.
95%에 달하는 부분은 숨겨져 있습니다.
무의식으로 불리는 영역이죠.
그렇기에 내 뜻대로 그것들을 찾아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질투를 하는 상황은 좋은 기회입니다.
내 안의 결핍이 저절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목표성취를 방해하는 요인 하나를 찾아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질투가 축복인 이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현명한 사람들이 질투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질투를 통해 발견한 결핍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해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질투의 바탕에는 결핍이 있습니다.
그 결핍은 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기인합니다.
이런 믿음은 현실에서 목표달성을 방해합니다,
숨어있던 믿음이 드러난 순간 그 믿음을 알아차리고 결국 바꿀 수 있습니다.
믿음이 바뀌면 현실이 바뀝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은 질투입니다.
그래서 질투는 축복인 것입니다.
결핍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번외편 성격으로 결핍을 다루는 법에 대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방법을 간단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라이킷과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
결핍을 다루는 방법
1. 감정 인정
먼저 올라온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판단이나 합리화하지 않고 상대를 깎아내리려 하지도 않습니다.
2. 결핍 마주하기
인정하고 나면 껍데기 없는 날것 그대로의 결핍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제대로 마주하면, 이제 그 결핍은 더 이상 질투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3. 믿음 주입하기
이제 결핍이 있던 자리에 내가 원하는 믿음을 심을 차례입니다.
방법은 다양합니다.
간단하면서 많이 알려진 방법으로는 100일 노트나 확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