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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Nov 20. 2023

끝이 보이는 두 시간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2023


두 시간, 나의 세상은 잠시 흑백으로 물들었다. 이미 색으로 가득 차있는 세상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색다른 시간이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에 내 맘대로 색을 입혀보고, 나무 색을 완전히 다른 색으로 바꿔보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재미있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속도 함께 뒤집어지고 있었다.


'주희'의 얘기로 영화는 시작하고 끝이 난다. 너무 충격적인 소식으로 얘기가 시작됐다, '유방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이었다. 의심 소견이면 긍정적인 회로를 돌릴 수 있는 시기기도 하지만, 주희에게는 조금 달랐다. 이미 가족력이 있었다. 그러나 주희는 추가 진료를 받지 않은 채 병원을 떠났다. 5시의 시작이었다.


주희는 대학교에서 연극영화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에서도 연극 소재를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 연극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와 연극을 넘나드는 전개가 마음에 쏙 들었다. 주희의 병원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빼고, 몇 발 짝 물러서서 주희의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으니까.


안 그래도 마음이 복잡할 주희에게 많은 일들이 자꾸만 찾아온다. 마음이 힘든 학생과, 입증할 수 없는 사실로만 무작정 성적 정정을 요청하는 학생들, 그리고 주희의 마음을 가득 담은 딸. 바빴기에 오히려 주희는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을까? 생각할 틈조차 없었으니 오히려 다행일 지도 모른다.


7시가 다가오고 있다. 주희는 무서움을 꺼내본다. 소중한 딸과 소중한 엄마를 눈앞에 두고, 주희는 어떤 마음으로 7시를 받아들였을까. 아마 본인도 결국 마음의 갈피를 못 잡았기에 무서움을 얘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주희는 영화에서 퇴장하고, 동시에 또 다른 연극의 시작이었다. 주희와 남편의 만남을 담은 연극이 시작되었다. 주희는 없다.


죽었다고 생각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자꾸만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어딘가에 모여 검은 옷을 입고 연극을 관람하는 것인가. 왜 본인이 주인공인 연극을 다른 이가 소개해주고 있는가, 아직 나는 7시가 됐다고 믿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난 그저 5시와 7시 사이, 6시에만 머물러있고 싶다.


나도 언젠가 삶을 결정할 시간의 경계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과연 나는 시간의 흐름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젠가 5시가 시작되고 두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그때의 나는 시간을 받아들이고 담담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주희가 지금 어딘가에서 열심히 학생들과 소통하고 딸과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하고 생각해 본다.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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