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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o 수오 Mar 07. 2023

고약한 기질의 상태 전환

인간의 개인적 성질, 곧 성격

 

나에게는 고약한 기질이 하나 있다. 그 고약한 것이 유용하게 발휘될 때면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소질로 인정받고는 했지만, 대부분은 나의 형편을 사납게 만들 뿐이었다. 때때로 그 성깔이 제법 사나워 밤낮으로 나를 괴롭힐 때가 있었다. 그 괴로움은 빛났다-어두웠다, 뜨거웠다-차가웠다를 넘나들며 알 수 없는 힘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내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그러나 본래의 기질 특성상 그러한 강렬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이내 희미해진다. 언제나 그랬듯 창대하게 나타나서 미약하게 사라진다. 그것이 강렬하게 머물고 난 다음에는 잔상이 한동안 남아 있어 이유 없이 내 속을 메스껍게 만든다. 정말이지, 시원하게 토사물이라도 왈랄라라 쏟아내고 싶지만 애초에 배출될 만큼의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 못한 터라 단지 만성질환으로 남겨질 뿐이다.


그렇다, 그 고약함 때문에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다 보면, 남들에게는 여타 할 하등의 문제가 없는, 어쩌면 지극히 무료한 일상적 반복에, 나는 느글거리는 울렁거림이 동반되거나 또는 벅벅벅 긁고 싶은 참을 수 없는 가려움(그러나 가려운 부위는 결코 손이 닿지 못할 부분에 있으므로 단지 견딜 수밖에 없는)이 동반된다. 덕분에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거나- 부지런히 생각하거나- 하여튼 부지런히 산만해야 그러한 멀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선택은 주로 그 녀석이, 그리고 수습은 오롯한 내 몫이었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는 말을 자주 하시던 엄마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었다. 저항도 해보았으나 그 녀석은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가까웠고 언제나 나보다 한 발 앞선 놈이었다. 과연 그것과 절교할 수 없는 관계라면 회피보다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쪽이 더 유익하다는 게 나의 최근 판단이었다. 갈수록 난처하게 특화되는(본능적 진화인지 지적 학습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고약한 것과 공존할 방법을 모색한 끝에 녀석이 좋아할 만한 선택을 내가 먼저 해버렸다. 그게 내 선택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꽤나 순종적이었고, 협조적이었다. 고약한 기질은 곧 소질로 상태 전환이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공범이 되었다.


힘이 올바르게 작용되고 있는지 또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는 현재의 나로서 도통 알 길이 없다. 단지, 나를 난처하게 만드던 힘이 무엇이 되었든 다른 일을 생산하는 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올바른 쓰임새로 보인다. 비록 생산되는 그 무엇이 타자가 보기에 가치가 없는 일처럼 보이거나 또는 에너지 낭비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나, 사실은 바람직한 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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