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감정
3시 9분. 이제야 9분이 지났네.
9분이 이렇게 길었나? 9분이 이렇게 야속한 시간이었나? 평소 9분이라면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인데, 일하는 중에 잠깐 통화하고 돌아오면 20분이 그냥 흘러 있는데 말이지. 머리 좀 비우려고 잠시 휴대폰을 켜면 1시간이 순식간인데. 9분이라니? 내가 10분만 좀 더 서둘렀다면 일이 성사됐을까? 왜 조금 더 미리 하지 않았을까? 왜 매번 이 모양이지? 왜 매번 서두르고 조급해하고 초초하게 다그치지? 비단 요즘만의 일인가? 아니, 작년 말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그리고 맞아, 대학 초 때도 아주 큰 일을 놓친 적이 있었어. 그때가 벌써 9년 전인가? 와, 벌써 그렇게나 됐던가? 지금의 9분은 이렇게 긴데, 그게 9년 전이라는 거야?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똑같은데? 여전히 조급하게 일을 그르치는데? 도대체 난 뭐하며 지내온 거지?
근데 , 그때나 지금이나 하는 행동은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일을 극복하는 태도는 조금 달라진 것 같아. 그때는 크게 우왕 울어버리고 금방 씩씩하고 밝게 그르친 일을 털어버렸지. 회복력이 아주 좋았어. 그래서 언제나 해맑고 싱그러웠지. 그럼, 지금은? 음 지금은 그 회복 시간이 조금 길어졌지. 금방 털어버리고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기에는 놓친 일에 너무 진심이 되었어. 그만큼 하는 일에 애정이 깊어져서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이제는 외면할 수 없는 다른 주변의 것들이 의식되기 시작했거든. 그래서 쉽게 털어버릴 수 없는 거야. 이전에는 몰라서 무지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거야. 그래서 쉽게 그 자리를 뜨기가 힘들더라고.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미련과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불안 때문에. 양쪽에서 밀려오는 두 감정 때문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게 되더라고. 머물면서 계속 자책하는 거야. 이건 이렇게 했어야지, 이때 이랬어야 했는데. 과거로 소급되어 하나씩 하나씩 다그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죄책감이 쌓이더라고. 현재의 나는 계속 다그치고 과거의 나는 언제나 죄인이고. 그러다 울컥해서 이런 마음이 들지.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다음에 뭘 해야 하는데?
와 그때가 진짜 막막하더라고. 그러게, 그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건데 말이지. 둘 다 우울감에 빠지지. 모르겠더라고. 뭘 해야 더 나아질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고. 9년 전에도 몰랐고 지금도 모르더라고. 그럼 9년 후에 나는 알까? 9년 후에 나는 조금 더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졌을까? 그때는 조금 더 이상적인 내가 되어 단단해져 있을까? 그때는 오늘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내가 되어 있을까? 궁금한 게 많은데 그 친구와 같이 이야기를 나눠볼 수는 없네. 그러니 글로서 흔적이라도 남겨놔야겠다. 현재 직면한 문제가 뭔지. 뭐가 고민인지, 그 친구한테 뭘 물어보고 싶은지. 그래 그러자! 그리고 지금은 다음 일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니, 우선 맛있는 걸 먹자. 기분 좋은 카페에 가자. 그리고 시간 나면 읽으려고 아껴둔 책을 잠깐 읽자. 좋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3시 21분이었다.
23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