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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 동생 Jun 22. 2023

한 가족의 이야기

동생의 간암 누나 간병일기

지금부터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혼잣말을 하듯 편하게 써 내려가보고자 한다. 대략 7개월간의 이야기이고, 정확한 시기에 맞춰 사건을 나열하기보다는, 조금씩 기록했던 내용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말할 것이다. 이건 사건의 경위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나와 누나, 그리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니까.


이 이야기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한 사람의 투병기이자, 한 동생의 간병기이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암이, 우리를 주인공으로 하여 온전하게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까지의 기록이다. 한 사람의 관점에서 기록한 찰나의 순간이기도 하다.


엄마는 B형 간염 보균자다. 간암의 가장 높은 발병원인은 만성 B형 간염으로, B형 간염은 출산 시 자녀에게 수직감염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알고 있다. 엄마는 누나가 당시 B형 간염 주사를 맞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고, 엄마는 늘 그 사실을 후회하며 나는 B형 간염 주사를 맞혔다고 말했었다.


누나는 평소에 늘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린 시절 아빠의 사업실패, 알콜중독, 장녀로서 엄마의 대나무숲이 되어야 했기에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쯤이야 누구나 갖고 있는 클리셰에 해당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누나는 첫째라는 이유로 많은 힘듦을 겪었고, 나는 둘째라는 이유로 누나에 비해 비교적 안락한 삶을 살았다. 누나는 자신의 가난하고 불우한 유년시절 때문에 사회에 나가 받았던 무시가 몹시도 서러웠는지, 나는 무시받지 마라며 늘 뭐든 해주곤 했다.


누나는 다소 강압적인 부모로 인해 점차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갔으며, 무슨 말만 하면 화를 내는 누나를 보고 부모님은 성격이 이상한 애로 취급 할 뿐이었다. 누나의 성격이 이상한 게 아니라, 늘 같은 부분으로 마찰이 생기기에 과한 반응을 보였던 것뿐인데.


다른 사람의 눈치는 항상 신경 쓰는 부모님 덕분에, 누나 또한 타인의 시선을 무척 신경 썼다. 내성적인 성격과 타인에게 굉장히 민감한 성격은, 누나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다. 누나는 대부분 1년을 채우지 못하거나, 간신히 채우고 이직하기 바빴다.


부모님은 그것도 버티지 못하냐며 늘 뭐라 했고, 누나는 회사를 다녀와서 늘 울며 속상해했다. 이직 준비 기간에는 혹시라도 취업을 못할까 봐, 부모님은 누나를 늘 들볶기 바빴다.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 때문에 누나는 누굴 만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친구도 많지 않았고, 그래서 늘 우리는 가족만이 전부였다.


누나는 이제 도저히 다니지 못하겠다며 다른 일을 찾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한 1년 정도 쉬었을까. 엄마는 매번 누나를 들볶았고, 누나는 조금 쉰 후에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엄마와 여기저기 많이 놀러도 갔고, 나도 프리랜서라서 가끔은 셋이 같이 놀러 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해 누나가 잔병치례를 유달리 많이 했었다. 어떤 날은 토했었고, 어떤 날은 기운이 없었고, 어떤 날은 어깨가 아프다고 했고. 어깨가 아프다는 말에 사무직이라 마우스를 많이 잡아서 그런가 보다, 기운이 없고 토하는 날에는 자주 체했었기에 속이 안 좋은가 보다 했었다.


나는 이때를 계속 후회한다. 이때라도 병원에 데려갔으면 같이 웃으며 지낼 수 있었을까? 자주 가는 의원에서는 누나가 자주 오니까 피검사를 권했었나 보다. 누나는 이때도 안 하려고 했지만, 의사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하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나는 지방에 출장 때문에 지하철에 가는 도중, 피검사 결과를 듣고 오는 누나를 만났다. 나는 반갑게 인사했지만 누나가 썩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지만, 열차 시간 때문에 나중에 집 가서 이야기하자는 누나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며 발길을 돌렸었다.


그런데 누나와 엄마가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했는데, 자꾸 넋이 나간 목소리로 올라와서 이야기하자는 말만 하더라. 불안한 마음에 내가 계속 추궁하니, 갑자기 누나가 3개월 밖에 못 산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의원에서 간암 종양 표지자 혈액 검사(AFP)를 했었고,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으나 누나가 대략 6만이라고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바로 2차 종합병원으로 입원하여 CT를 포함한 검사를 시행하였고, 그 결과 척추로 전이되어 이미 많이 늦은 상태였다.


종합병원 의사는 이미 늦었다는 말을 하면서도, 누나가 젊으니까 연명치료를 해보자고 권유했다. 누나는 나중에 나에게 이때 치료를 받기 싫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너무 슬퍼하니까, 그래도 받아보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었다.


일단 나는 위의 과정을 모른 채 갑자기 3개월을 산다는 말을 듣고 바로 올라가려 했지만, 누나가 동생 중요한 출장이라고 절대 말하지 말라고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했다고 했다. 내가 지금 당장 올라가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출장을 잘 마치고 오는 게 누나가 원하는 것이라면, 누나의 소원을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업무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왔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밤새 간암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다. 다행히 마지막 날 밤에 소식을 들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차를 타고 올라갔다. 올라가는 중에도 간암에 대한 정보들을 검색해 봤고,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누나는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애써 웃으며 반겼고, 나도 그냥 피곤해서 일찍 올라왔다고 둘러댔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받아온 물품들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애써 웃었고. 간단하게 씻고 나와서 누나랑 이야기를 나눴다. 누나는 내가 모르는 줄 알았지만, 사실 듣고 올라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누나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때였다. 얼마 전에 엄마와 같이 어느 때처럼 절에 갔는데, 이상한 아저씨가 정신이 나간 모습을 하고 법당에 들어갔다고 했었다. 그 이상한 아저씨는 이내 한 젊은 사내의 영정사진 앞에서, 아빠 왔다고 잘 지냈냐고 구슬픈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누나는 자신이 죽으면 부모님도 저렇게 될까 봐 충격을 받았나 보다. 그래서 이제 죽는다는 소리를 안 하고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야 겨우 마음을 다잡았는데,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속상했을까.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있는 슬픔이었을까? 내내 우는 누나 옆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손을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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