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간암 누나 간병일기
누나의 손을 잡았는데, 손이 너무 차서 많이 속상했다.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마지막을 마주한 채 속상해하고 있는 누나의 옆에서, 나라도 억지로 괜찮은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데.. 옆에서 같이 울고, 급하고, 힘든 모습 보여서, 의지 할 수 없는 모습만 미안해. 하지만 누나라도 나처럼 같이 울지 않았을까? 아니 누나는 나보다 더 했을 거야. 그러니 이번만 봐줘 다음부터는 내가 누나 책임지고 데리고 다닐게.
나 진짜 처음에 누나가 3개월 남았다는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더라. 부모님도, 누나도 평생 죽도록 고생만 했는데, 이제 조금 괜찮아졌는데, 곧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했어. 그런데 더 속상한 건 얼마 전에 비싼 암보험을 해지하는 바람에, 가면서도 줄 게 없다는 말을 하는 누나의 말이었어. 그때는 정말 속상했었는데, 내가 누나였어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긴 해. 우리는 우리가 전부였으니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서로의 일을 하느라 같이 살지만 얼굴도 자주 못 보는 게 맞긴 한데, 곧 이별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까 늘 바쁘다는 핑계로 같이 못했던 게 많아 너무 속상하더라고. 바보같이 지금에서야 당장이라도 누나랑 어디라도 가고 싶은데, 누나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의원에서 피검사 결과를 듣고 1주일 뒤에 바로 대학병원 일정이 잡혔네.
2~3일 뒤에는 대학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전에라도 어디 갈 수는 없을까? 평소에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한강공원을 못 가봤다는 말이 왜 이렇게 슬펐을까. 그래서 얼마 전에 마트에서 한강 라면을 만지작 거렸구나.. 택시 타고 당장 가자고 말하고 싶은데, 누나는 곧 병원에 가니까 다음에 가자고 말했지. 그래도 아프기 전에 길게 쉬어서 여한이 없다는데, 그 길게 쉬는 동안에 같이 가지 못해서 미안해. 꼭 치료하고 같이 한강 가서 라면 먹자.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은 잠시 나의 일을 뒤로 미루고 오롯이 누나의 동생으로 살고 싶었어. 내가 프리랜서를 선택하고 힘든 순간이 많았었는데, 누나랑 같이 할 수 있어서 프리랜서로 전환을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어.
사실 외부활동도 누나의 마지막 순간까지는 전부 안 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자신 때문에 동생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할까 봐, 더 속상해할 것 같아서 누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마음 졸이면서 다녀오고 그랬지. 그래도 다녀오면 늘 좋은 소식 들려주려고 노력했어. 그래야 누나가 마음 편할 것 같아서.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인 것 같아서.
그런데 누나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인데, 치료하는 게 맞았을까. 찾아보니까 암 환자와 가족들은 치료를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더라. 항암치료가 얼마나 독한지, 치료를 해서 안 좋아지면 했다고 후회한다고 하더라고. 남은 인생 힘들지 않으려고 항암치료를 안 하면, 그때 했으면 달랐을까 하고 후회한다고 하고.
누나는 힘들까 봐 항암치료를 하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치료했으면 하는 마음이 누나가 많이 힘들걸 알면서도 옆에 더 두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닐까 수 없이 고민되더라. 간호사인 여자친구는 안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는데, 나도 확률이 낮은 거 아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 희망을 갖고 싶더라. 그런데 여자친구의 만류는 다른 이유였다는 걸, 누나를 보내고 나서 깨달았지.
나는 누나가 치료를 받냐, 안 받느냐를 고민하기 전에, 치료가 가능할까 걱정이 되더라고. 늦게나마 여기저기 검색해 가며 찾아보니까, 항암치료는 정말 마지막에 받는 최후의 수단이더라. 전이가 안 됐다면 절제 수술도 고려할 텐데 이미 늦은 상황이고, 혈관에 항암제를 직접 투여하는 색전술이라는 방법은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희망적인 건 10년 만에 새로운 항암제가 건강보험이 된다네? 건강보험이 된다는 말은 객관적으로 이전 치료법보다 생존율이 높다는 데이터가 있어야 가능한 거래. 기존에 넥사바는 암 관련 인자만 표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항암제는 암세포가 면역세포를 피하는 속임수를 해제하는 방법이라 나 봐. 방법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좋은 소식이니까 우리 기대해 보자!!
우선 누나는 당장 뼈전이 때문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종합병원에서 처방받은 진통제부터 당장 먹어야 했지. 누나는 마약성 진통제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고 잘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찾아보니까 많은 의사들이 아프면 진통제를 참지 말고 먹으라고 하더라고. 일부 바보 같은 보호자들은 중독될까 봐 참으라고 안 준다고 하던데,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어.
진통제를 먹으면 일단 통증은 가라앉는데, 대신 구토증상이 심해져서 참 힘들었었지. 그래서 누나 맨날 살찐다고 먹고 싶은 음식들 참았던 거 후회하기도 했었고. 다 낫고 먹는 건 너무 먼 이야기니까, 조금 괜찮아지면 그때마다 먹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먹자. 그렇게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자. 이제 미루지 말고.
누나가 동생 생일이라고 짜장면이랑 사천탕수육 사줘서 너무 잘 먹었어. 내년에도 내 생일에 꼭 짜장면이랑 탕수육 사줘야 해 알겠지? 미리는 안 받으니까 꼭 그때 사줘야 해. 만약 치료비로 돈을 다 써서 없으면, 같이 편의점 가서 삼각김밥이라도 사줘야 해. 정말 누구보다 맛있게 먹을 자신 있으니까!
벌써 대학병원에 가는 날이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지.. 종합병원에서는 3개월이라고 말했지만, 대학병원에서는 혹시 모르는 거잖아 그렇지?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같이 대학병원에 갔지. 살면서 대학병원에 처음 와보는데 정말 정말 넓더라. 그 넓은 곳에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저 사람들도 암 환자겠지?
가족들 모두 외래라는 게 처음이었고, 누나는 외래를 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힘들었었지. 누나가 많이 힘든 와중에 내가 계속 사진 찍어서 정말 싫어했었고. 평소에도 사진 찍는 거 싫어해서 몇 장 없잖아. 그런데 내가 할머니 돌아가실 때 가장 후회했던 게 사진이나 영상이 하나도 없는 거였어. 귀찮게 계속 사진 찍어서 정말 미안한데, 이렇게라도 찍어놔야 나중에 누나가 보고 싶을 때, 사무치는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 같았어.
사실 출장에서 올라온 뒤로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누나가 힘든 상황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할까 봐 차마 말을 못 했거든? 지금은 정말 후회하고 있어. 욕을 먹더라도 말이라도 해볼걸. 그게 우리 가족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사진이었을 텐데. 누나한테 혼났지만, 여러 사진도 찍고 혈압이랑 체중 측정하는 영상도 찍고 다 했지. 그런데 그 사이에 벌써 몸무게가 2~3kg나 빠져버렸네..
외래를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 그래도 의자가 조금 비어있어 있는 덕에 외투를 베개 삼아 조금이라도 누워서 다행이었어.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담당 교수님을 처음 보는데, 종합병원 의사랑 똑같이 시한부 이야기를 하더라고. 지금 당장은 원발암인 간암을 치료하는 색전술이랑, 척추 뼈전이를 치료하는 방사선 중에 선택하라는데.. 잘 모르겠다니까 우선 색전술부터 하자고 하네.
분명 다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직접 들으니까 너무 속상하더라. 애써 참고 참았던 눈물이 다시 날 뻔했어. 아냐 누나 잘 이겨낼 수 있어. 얼마 전에 같이 갔던 절에서 내가 절도 엄청 열심히 했거든. 절을 정말 열심히 해서 그런가 누나 안색이 좋아져서 기대해 봤는데. 엄마도 예전에 간경변 잘 이겨냈으니까, 누나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누나, 부족한 동생의 누나여서 고마웠어. 누나가 힘들게 번 돈으로 나 어디 가서 아쉽지 말라고 다 경험시켜 준 덕분에, 늘 어디 가서 부끄럽지 않은 동생이었어. 남매끼리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누나 사랑해. 치료하고 조금 괜찮아지면 같이 한강 가서 라면도 먹고, 들꽃마루 가서 사진도 찍고 그러자. 이제는 동생이 해줄 차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