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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걸어서 뇌 속으로 Sep 15. 2023

작은 친절의 힘

친절의 뇌과학

오늘은 유난히도 힘든 날이었다. 쏟아지는 할 일들에 버거워서 질식할 것만 같던 날, 기계적으로 전자렌지에 집에서 싸온 차가운 점심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한 배고픈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음식들이 있던 캐비넷이 누군가 이미 다 가져가버려 비어버린 걸 보고 매우 실망스럽고 지쳐보였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나와 상관없던 그 학생의 수척한 눈가가 나의 지친 하루와 닮아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 학생에게 내가 점심을 좀 많이 싸왔는 데, 같이 먹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그 학생은 약간의 놀란 얼굴과 함께 좋다고 말했다.


그 학생과 같이 점심을 먹으며 알게되었지만, 그 학생은 사실 나보다 한 학년이 높은 선배였다. (나는 현재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 그 선배는 내가 정말로 필요로 했던, 그러나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던, 정보들을 제공해줬다. 결코 그 사람이 선배일 거라는 생각이나 정보들을 알 거라는 생각으로 선행을 베푼 건 아니었지만 그 선행은 내게 고작 내 점심보다 몇 배의 값진 도움를 선물해줬다.


사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도와주는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는 지 모른다. 우리의 뇌는 도움을 베풀 때, 행복함 이나 뿌듯함 등의 긍정적인 느낌이 드는 신호들을 방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신호는 인류가 서로를 유기적으로 도와야지만 생존에 유리하기에 이러한 신호를 가진 뇌들이 살아남고 자손을 퍼트려 현재에 이르렇다고 사회 진화학자들은 보고 있다.


우리가 도저히 혹은 빠른 시일 내에 우리의 제한적인 시간, 돈, 지식 등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상대방의 도움을 통해 해냄으로서 우리는 살아간다. 물론 동물들 역시 이타적이라 보이는 행동들을 하긴 하지만, 그 수가 적고 온전히 이타적이라 보기 힘든 경우들이 많다. 그렇기에 인간이 특이하고 그렇기에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고 생존한 지도 모른다. 서로가 조금씩 베푼 도움이 번지고 번져서 약한 개개인을 강한 전체로 만들었는 지도 모른다.


혹시나 오늘 하루 힘들었다면, 누군가를 도와주는 게 어쩌면 스스로를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다 (긍정적 뇌신호가 나오므로) 그리고 그 도움들이 모여 인간이라는 종의 생존을 도와주니 인류학적으로 큰 일을 해낸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누군가 당신의 도움을 거절하거나 차갑게 나오더라도 괜찮다. 당신은 도움을 제안한 것으로 더욱 더 진화되고 생존에 적합한 인류이나, 차가운 누군가는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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