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환빈 Jun 28. 2024

서울국제도서전 관람 포인트 하나

우리나라 책 관련 행사 중 최대 규모인 서울국제도서전이 6월 26일에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주말인 30일까지 열린다고 하네요. 저는 개막일부터 이틀 연속 다녀왔는데요, 첫날도 인파가 정말 많았는데 둘째 날은 더 많더군요. 주말 되면 진짜 발 디딜 틈도 없을 것 같습니다. 관심 있고 시간 되시는 분은 가급적 오늘(금)이라도 가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도서전에는 여러 출판사들이 부스를 열고 다양한 행사와 멋진 책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뭐, 이런 부분은 인터넷 검색하시면 여러 후기 찾을 수 있으실 거라 제가 딱히 덧붙일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크게 주목받고 있지는 않는 한 가지 포인트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도서전 행사장에서 쭈우우우욱 들어가서 맨 끝 왼쪽에 보시면, 2024년도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으로 선정된 40권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크게 4개 종목으로 나눠서 가장 아름다운 책, 즐거운 책, 재밌는 책, 지혜로운 책이 있습니다. 제가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도 지혜로운 책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가 본론인데요.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아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개막일인 26일에 이 40종 책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이때 부문별로 '대상'격에 해당하는 1등 서적들을 선정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책 부문에서는 서보경 작가님께서 지으시고 반비출판사에서 펴낸 <휘말린 날들 -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가 대상으로 뽑혔습니다.

(전시장에서 이 책 볼 때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몰리는 바람에 사진을 못 찍어서 아쉽네요 ㅠ)



아직 책을 읽어보지는 못 해서 뭐라 자신 있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전시장에서 살짝 훑어보니까 대상의 품격이랄까요, 그런 게 엿보였습니다. 심사위원들께서 괜히 심사숙고해서 1등으로 뽑은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신간 완성하고 나자마자 바로 사서 볼 예정입니다. 도서전 가시면 전시장 들르셔서 구경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처럼 훌륭한 작품은 얼마나 팔렸을까요? 작가님께서 저랑 며칠 차이로 책을 내셨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알라딘과 예스 24에서 판매지수가 똑같아서 저는 판매량을 추측할 수 있답니다. 하하. 교보는 판매지수가 단위로 집계되는 시스템이라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저보다는 많이 파셨던 듯합니다. 그래도 이런 큰 도서전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볼 만큼 많이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이게 우리 독서문화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는 거의 다 유명인의 책이고, 그런 이유에서 번역서가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이름값만으로 책이 홍보되는 거지요. 더군다나, <휘말린 날들>은 HIV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고 488페이지로 두껍습니다. 대중이 선뜻 손을 내밀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내지 디자인도 뭐랄까. 좀 실험적으로 하셨더라고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런 선택을 하신 이유가 있으셨지 않나 싶습니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대단히 만족한 모양입니다. 서평이 많고 점수가 매우 높습니다. 출판사에서 리뷰이벤트로 쓴 걸로 보이는 서평을 제외하더라도, 반응이 좋네요. 그래서 신뢰가 갑니다. 이만한 글을 쓰시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짐작이 되지 않네요.


이번 시상식에서는 40종 책을 쓴 작가 또는 출판사가 모두 짧은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작가님들 소감을 하나하나 듣고 있자니 진짜... 나만 이 고생해서 썼던 게 아니구나 하며 동질감을 크게 느꼈습니다. 어떤 분은 소감 발표하시다가 우셨습니다. 그림책 작가님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냥 단순히 상 받은 게 기뻐서 우신 게 아니라 그림책 작가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도 묵묵히 이 분야에서 계속해서 힘쓰는 동료 작가님들을 생각하시면서 슬퍼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책 중 또 다른 관심작


출판업계가 많이 쇠퇴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으셨을 겁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간 8만 종의 책이 나왔는데 작년에는 6만 종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저는 6만도 솔직히 많아 보입니다. 모든 작가가 다 자기 책 쓰느라 공을 들이겠지만, 그중에는 더 공을 들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책이 워낙 많으니 옥석을 가리기 힘들고, 그래서 꽝을 뽑았다가 책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습니다. 저도 인터넷으로 책 샀다가 중도 포기한 게 여러 개라 요즘엔 책을 안 사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도서전처럼 전문위원을 모집하여 책을 심사하고 우수작을 선정하는 것은 독서 문화의 부흥에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는 단순히 여러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10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1권의 책이 더 값어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그런 훌륭한 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출판업계에서는 계속해서 좋은 책을 심사하고 널리 알려야 합니다.


이번에 도서전 가시면, 가장 좋은 책 전시장에서 어떤 책들이 뽑혔는지 유심히 봐주세요. 특히, 지혜로운 책 부문을 눈여겨보세요. 아름다운/즐거운/재밌는 책도 다 훌륭하고 중요하지만, 저는 책의 본연의 가치가 지혜에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책들은 우리 사회에서 널리 판매되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작가가 소신껏 연구해서 쓴 주제들입니다. 쉽게 말해, 돈 보고 쓴 책이 아닙니다. 작가가 왜 1-2년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공들여 투자했는지를 생각해 보시고 공감이 가신다면, 분명 만족스러운 독서가 될 겁니다.

(* 아름다운/즐거운/재밌는 책 중에도 분명 지혜가 가득 담긴 책이 있을 겁니다!)


저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8년간 연구하면서 읽은 외서만 500종에 달합니다. 연구 목적으로 본 거라 특정 챕터나 주제만 읽은 게 많긴 하지만, 그래도 일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다 읽은 책은 친이스라엘이든 친팔레스타인 학자든 전부 백년지기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같은 연구자이기에, 이분들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인생에서 짧게는 5년, 길게는 십수 년의 세월을 같이 보낸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압니다.


어제 도서전 후기에서 강연 끝나고 무려 세 시간 반 동안 질의응답을 더 이어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열심히 연구한 것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게 너무나도 반가워서입니다. 특히, 제 책을 다 읽으신 분들은 족이나 친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저랑 함께 보낸 거랑 같습니다. (물에 빠지면 친구보다 독자부터 구할 듯.... 요?) 언젠가는 질의응답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독자가 탄생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는 건 저만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자기 책 공들여 쓴 모든 작가, 특히 지혜로운 책으로 선정된 글을 쓴 작가라면 100% 똑같은 마음일 겁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알게 된 서보경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고 제 마음속 십년지기로 삼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도서전 가셔서 좋은 책 찾아보시고, 자신만의 작가 친구를 만들어보시길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간 표지시안 고민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