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에 대학생 국제정치/외교 컨퍼런스(UIDC)에서 팔레스타인 강연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강연 제목은 "전쟁은 10월 7일에 시작되지 않았다 : 팔레스타인 역사로 본 가자지구 전쟁의 배경"이었는데요, 우리 기획단 학생들이 직접 정해주신 제목입니다. 매번 강연을 할 때마다 주최 측에서 제목을 선정해주시고 있는데, 저마다 관점을 달리하시는 게 참 흥미롭습니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45명의 대학생들이 홍대 강의실에 모였습니다. 놀랍게도 12시부터 7시까지 진행되는 초 강행군 행사였습니다. 첫 두 시간은 주최 측 발제와 한겨레 정의길 기자님의 우크라이나 강의가 있었고, 팔레스타인은 2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100분 강연하고, 이어서 60분 동안 가자지구 전쟁에 관해서 대담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우리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를 토의했습니다.
이번 강연은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기대도 많이 했지만 걱정도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역사를 설명하는 거니까 지루하고 복잡할 수밖에 없어서... 그래서 PPT 시각화에 특히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만, 아니나 다를까 처음으로!! 조는 학생이 나왔습니다. 꾸벅꾸벅 졸다가 다시 눈 떠서 열심히 듣다가 다시 또 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애처롭더군요. 저도 학창 시절에 저랬는데... 하하하.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단 2명을 제외하곤 모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끝까지 잘 들어주셨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이 찾아와 질문도 던지면서 강의가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연신 감사 인사를 해 주셔서 감격스러웠습니다. 심지어, 행사 다 끝나고 나서는 일타강사라는 과분한 호칭까지 들었습니다. 이건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칭찬이라 당황스럽더군요.
아. 그리고 이번에도 정말 정말 반가운 손님이 있었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강연을 듣고 질문도 하실 정도로 관심이 많으셨던 대학생 분께서 또 찾아와 주셨습니다. 도서전 때는 주어진 시간이 짧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터라, 와주신 게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강의 중에 여러 번 봤는데,볼 때마다 초! 집중 자세로 경청하시더군요. 이런 분들 덕분에 힘을 얻어서 매번 강연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 책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에 인덱스를 덕지덕지 붙여가시면서 열심히 공부 중이시더군요.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이외에도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학생들 요청으로 홍보용 연사 인터뷰에 응했는데, 질문 중 하나가 국제정치학도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였습니다.
Q: 국제정세에 관심을 가지는 국제정치학도들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A: 우리나라에서 국제정치나 외교를 바라보는 관점은 딱 한 가지입니다. 바로 실용주의입니다. 작금의 가자지구 전쟁조차도 인권이 아니라 뭐가 국익에 도움이 되냐로 바라봅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이게 우리나라가, 우리 국민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하시나요?
국가의 안보를 책임져야 할 정책결정자들은 어쩔 수 없이 실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6.25 전쟁을 비롯해 많은 전쟁을 겪었고, 외부의 도움을 받아 이겨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전쟁이 없는 세상을 바라야 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전쟁을 그저 흥미본위로만 다룹니다. 전쟁으로 얼마나 죽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될지와 같은 피상적인 일만 보도하고, 왜 전쟁이 일어났고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도외시합니다.
UIDC 컨퍼런스는 종래의 시각을 탈피해서 분쟁의 원인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국제정치와 외교를 공부하면서 삼는 목표가 전쟁이 몇 개월 몇 년 더 계속될지를 예측할 수 있는 점쟁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을 예방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얼 공부해야 할까요. 바로 분쟁이 생겨난 이유, 그리고 계속되는 이유입니다.
이번 강연에서 컨셉으로 잡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특히 언론은, 가자지구 전쟁을 지나치게 흥밋거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게 가장 잘 드러나는 측면이 바로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입니다. 사람으로서 어찌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이런 태도가 결국 분쟁에 대한 방관자로 머무르게 만들고 나아가 분쟁이 지속되는 데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으실 테니 비유를 들어 설명하지요. 우리 옆집에서 싸움이 났습니다. 가서 보니깐, 옆옆집 사람이 옆집 주민을 때리고 칼로 찌르고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겠지요? 아, 그런데 이 동네는 경찰 출입이 금지된 구역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 분들은 나한테 불똥이 튈지도 모르니 못 본 척하고 집에 돌아가 문단속을 하겠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게 우리나라가 외교를 하는 방식이지요. 자, 그런데 옆집 이웃이 죽을까 봐 걱정돼서 개입하기로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먼저 '왜 싸우는지를 물어야죠.' 그러고 나서 싸움을 말릴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누가 잘못한 건지를 따지고, 그리고 폭력 이외의 방법으로 해결은 안 되는지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이게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이죠?
그런데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옆집에서 싸움 났다는 소리를 듣고 다가가 관찰합니다. "이야, 칼로 어깨를 찌르려 하니까 테이블 밑에 숨었네? 그런다고 방어가 될까? 역시 거 봐. 칼 맞았잖아. 에구, 방으로 도망치면 어떡해. 거기 도망갈 자리가 어디 있다고. 이번엔 허리에 맞았네. 피 흐르는 거 좀 봐."
한참을 그렇게 관찰하다가 현장에 다가가 갑자기 질문을 던집니다. "이보쇼,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요? 칼로 더 찌를 건가요? 이번엔 다리? 아니면 이제 끝난 거요?" 더 싸우겠다는 대답을 듣자 이렇게 말합니다. "어, 그러면 혹시 어떻게 하면 멈출 거요? 좀 시끄러운데."
여러분. 이 사람의 태도가 어떻습니까. 누가 봐도 사이코패스 아닙니까. 그리고 이게 우리 정부와 국민 대다수의 모습입니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질문은 던지지도 않은 채, 전쟁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예측만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겁니다.
강연 당일 하마스의 정치국 지도자인 이스마엘 하니예가 이스라엘에 암살당했습니다. 발표준비를 하느라 아침에 뉴스를 못 보고 갔다가, 어떤 학생이 이 얘길 하시길래 전날에 헤즈볼라 고위 인사가 죽은 거랑 오해하신 듯하다고 잘못 알려드렸습니다. 이 분은 이후 일정이 있으셔서 바로 행사장을 나가셨고, 그 직후에 다른 학생이 제게 뉴스를 보여주더군요. (잘못 알려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연락드릴 길이 없네요 ㅠㅠㅠ)
아무튼, 그러다 보니 대담 시간에도 가자지구 전쟁의 미래에 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하마스가 영구 휴전을 포기하고 일시 휴전이라도 만족하겠다고 태도를 바꾼 직후부터 이스라엘이 갑자기 공세를 올렸고, 하니예까지 암살했으니 휴전협상을 방해하는 게 목적인 듯하다고 답변드렸습니다. 그러나호기심은 이해되지만 이런 게 좋지 않은 관심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전쟁이 벌써 10개월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로 12년 간 일해온 저는 그동안 이 전쟁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고민은 안 했습니다. 단지 역사에 근거해 이스라엘의 목적이 무엇인지만 추측해서 알렸을 뿐이고요. 왜냐하면 전쟁의 향방은 누구도 정답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설령 안다고 한들 그게 주식과 같은 경제 문제 외에는 하등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나 우리 정부가 평화협상에 도움을 주려고 묻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데 관심을 보낼 시간에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부터 제대로 공부하고, 나아가 어떻게 하면 전쟁을 멈추는데 보탬이 될지를 고민하는 게 인간으로서 마땅한 도리 아닐까요?
학창 시절에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자세는 결국 사회에 나가서도 그대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아는 기자님 있으면 붙잡고 물어보세요. 혹시 이번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아시냐고.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왜 싸우는지 아냐고. 대부분이 답변을 못하시거나 중학생 수준 정도의 어설픈 지식만 늘어놓으실 겁니다. 분쟁이 시작된 지가 벌써 백 년도 넘었는데 왜 모를까요. 학생 때부터 그런 거엔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아서 공부를 안 했고, 직장인이 된 후로는 하려고 해도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쟁 상황이나 예측에 관한 외신 보도만 그저 요약해서 전달하고, 간혹 교수님들 인터뷰하더라도 나오는 얘기가 늘 거기서 거기입니다. 누구 하나라도 이런 문제를 바로 짚었다면, 제가 전공도 아닌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구하는 데 10여 년의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기성세대는 반성해야 마땅하고, 청년들은 지금부터라도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고 또 반갑게도, 어떤 학생은 '전쟁을 그동안 스펙터클하게 바라본 것 같다'며 자성적인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여러분, 이-팔 분쟁이 비록 세기를 넘은 역사를 지녔지만 그 본질은 단순합니다. 2시간짜리 기초 강의만 듣더라도 핵심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강연을 들은 여러 학생들이 그동안의 궁금증과 의구심이 해소되었다고 말씀해 주셨고요. 우리가 그동안 팔레스타인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해 온 까닭은, 분쟁의 원인을 하나도 연구하지 않은 비전문가들이 매번 전쟁에 대해서만 떠들어대다 보니까 생긴 '교육의 부재'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팔레스타인 트랙을 열어주신 UIDC 기획단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한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냈다고 칭찬드립니다. 우리가 당장은 커다란 변화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한걸음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겠지요.
너무나도 고마운 우리 기획팀 친구들. 저도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대담 시간에 학생들이 참으로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브런치 독자 분들께서도 알아두면 좋을 내용이 많아서 다음 글에서는 이걸 소개하고자 합니다. 다만, 신간 원고부터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라 언제 글을 쓸지는 모르겠네요..
<언론에서 말하지 않는 가자지구 전쟁의 진실>은 원래 150페이지 이내의 글로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욕망을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도 학생들 관심사를 알게 되고 나니 가르쳐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습니다 ㅠㅠ 그래도 적당히 마무리하고 9월신학기에 선보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