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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4시간전

월드비전 팔레스타인 강연 후기

다들, 월드비전은 들어보셨지요? 기독교 정신에 기반해 구호와 국제개발협력에 힘쓰는 민간단체로, 여의도에 본사를 두고 국내외에 여러 지부를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큰 단체입니다. 그야말로 이 분야에서는 일류 대기업입니다. 그리고 그런 명성에 걸맞게 직원들의 인문, 교양 지식 및 트렌드 습득을 위해 매달 1회 '월비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지난주 11월 14일 수능날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가자지구 전쟁을 주제로 제가 강연을 했습니다.


월드비전은 제가 KOICA 팔레스타인 사무소에서 근무할 때도 잠시 인연을 맺었던 곳입니다. 2014년에 월드비전이 민관협력사업으로 팔레스타인 북부 제닌 지역에서 교육 사업을 진행했고 제가 모니터링을 담당했습니다. 이번 전쟁 직후에도 월드비전은 가자지구에 구호물자를 파견해 고마움을 느꼈는데, 이렇게 강연으로 다시 연을 맺을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다만, 강연 기획을 할 때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는 친이스라엘 색채가 짙은 종파가 많다 보니 직원들이 이스라엘에 우호적이라고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팔 분쟁이 기독교 교리와 연관된 문제도 아니고, 그런 선입견을 깨트리고 분쟁의 본질을 알리는 역할이다 보니 '우리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는가?'를 주제로 잡고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의 핵심 내용은 다음 세 가지였습니다.

1. 이스라엘 건국 전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고향은 팔레스타인이 아닌 유럽이었다.

2. 분쟁은 종교 갈등이 아니라 독립을 위한 민족분쟁이었다.

3.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과 식민 지배에 대한 침묵이 전쟁을 일으켰다.


강의 시간이 70분, 질의응답 20분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세 가지 내용을 모두 깊이 있게 다루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중간중간에 1차 사료도 조금씩 인용해 가며 열심히 문제의 본질을 설파했고, 직분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거나 깜짝 놀라시고,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보며 의미 전달이 잘 된 것 같아 다행스러웠습니다.


이번 강연에서 나름 신경 쓴 것 중 하나는 중립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립이 좋다는 이상한 관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립은 그저 편을 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할 뿐이지 좋고 나쁨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며 한국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며 위안부 여성들이 속아서 강제적으로 일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측의 주장이니 일본에 대해 비판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올바른 행동일까요?


이-팔 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150년간 온갖 잘못을 저질렀고, 이는 유대인들 스스로가 남긴 기록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중립이라는 미명 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모를 뿐입니다. 역사를 직시하는 UN은 이번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서 하마스가 아닌 이스라엘을 비판합니다.


이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수십 년 간의 폭력과 [서안 및 가자지구] 불법 점령,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에 대한 이스라엘의 부정이 있었다. 후자는 지속적인 강제 추방, (토지) 몰수, 천연자원 약탈, 정착촌(=식민촌) 건설과 확장,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체계적인 차별과 억압으로 나타났다.



다행히도 다들 중립에 대한 문제의식에 동의하신 듯했습니다. 그런데 강연이 다 끝난 후 뒷정리 자리에서 직원 분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제가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싶지 않아서 살면서 일부러 종교를 멀리 했는데, 이-팔 분쟁을 다루면서 처음으로 신념을 꺾고 종교적 문제도 관여하게 되어 안타깝다'고 말하자 한 직원 분이 '중립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냐'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반사적으로 다른 문제인 듯하다고 답했으나, 이내 생각을 해보니 그 지적이 옳은 듯하여 그간 잘못 생각했고 반성해야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도 갈 길이 머네요... 앞으로는 종교 문제에 대해서 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한국외대 중동문화연구회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운영하는 학회인데, 1학기 때 이-팔 분쟁에 대해서 나름 공부를 했다고 하셔서 퀴즈를 내드렸더니 역시나 대부분 다 틀려서... 배웠던 내용이 올바른지를 '1차 사료'를 보고 직접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시중에 풀린 비전문가들의 역사 왜곡 도서와 언론 기사를 바로잡는 운동이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날씨가 너무 급격히 추워졌는데 다들 건강 조심하시고,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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