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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 블루 Mar 09. 2024

순간의 영원(4)

혼자 있는 시간에 네 생각을 하는 게 좋아.




매주 좋아하는 순간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리를 하고, 먼지를 털고, 닦고. 윤이 나도록 기억에 네임택을 언제 어떻게 좋았냐고 붙이는 행위들. 이번주의 기억에 남는 대화 중 좋아하는 사람과는 늘 같이 있고 싶어 진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자주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건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는 무관하게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좋아한다.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 친구도 자러 가고 생활 패턴이 밤에 맞춰진 나는 술을 마시러 밖으로 나갔다. 물론 혼자.


매주 영화를 보는 친구도 있고, 가끔 새벽에 문득 영화를 보는 친구도 있고, 이렇게 진지한 얘기부터 가벼운 이야기까지 종일 얘기하는 친구도 있고, 문득 생각이 났다고 안부를 묻는 친구도 있고 이런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면 결국 조용해지는 시간을 못 견딘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또 시간이 맞는 친구를 찾기 위해 항상 약속을 잡았다. 잠들기 직전까지 놀고 떠들어야 뭔가 하루가 덜 빈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유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일기장을 쓴 이후부터였을까,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며 내가 지나치게 에너지를 여기저기 소모하는 것을 알게 됐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실도 알았다. 일종의 회피 같았다. 필사를 하고 혼자 책을 읽으면서 혼자인 시간에 적응을 하면서는 적절한 비율로 혼자 있거나 같이 있는 시간을 분배했었는데 이러고 나니까 여유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여유가 없을 때는 여유라는 말에 대해 이해를 잘 못 했었는데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찾아오는 여유를 들여다봤더니 어떨 때 여유가 있고 어떨 때 여유가 없는지를 제법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제일 달라진 점은 혼자 마시는 술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건데 같이 모이는 술자리에서 술보다는 사람에게 포커스가 가서 맞춰졌다면 혼자 술을 마실 때는 나와 내 취향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오늘 마실 술은 달모어와 발베니인데 각기 다른 술을 비교해 보고 싶기도 했고 취할 때까지 무리해서 억지로 마시지 않아도 좋아하는 공간에서 편안하게 물과 술을 번갈아 마시며 좀 더 어떤 맛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싶기도 했다. 물론 알코올이 들어가면서 묻어둔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면 지금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이 나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연락을 하고 있던 친구가 생각나기도 한다. 공통점은 혼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좋아졌다는 점이고. 이제 혼자 있어도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


사람은 같이 있어도 혼자 같이 느껴질 때가 있지만, 기억이라는 건 사람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니까. 그것이 추억일 수도 있고, 함께 있었던 순간에 대한 감상일 수도 있다. 


지나간 일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좋았던 일들을 오래 곱씹고 싶다. 역시, 혼자인 시간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순간이 좋았다. 방해받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좋아하는 취향을 즐기는 건 순간의 영원이라는 제목과 꼭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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