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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 블루 Mar 02. 2024

순간의 영원(3)

슬픔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을 사랑해.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단상은 오래지 않아 지워졌다. 사실 짧다면 짧을 순간이고 길다면 긴 순간이겠지만 끝이라는 것은 언제나 같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같은데 감정적으로 나눠가지는 무게는 때때로 불공평했다. 너무 가볍거나, 지나치게 무거웠다. 근래는 게임 친구들이 그랬다. 최근에는 바빠지면서 접속이 힘들 것 같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깨닫는 부분인데, 안녕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사이는 상대방이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을 슬픔까지 안고 갈 것만 같았다는 추측 때문에라도 언제부턴가 어떤 관계이든 끝마무리를 좋게 만들어보자는 행동을 버릇으로 만들었다.


물론 모든 관계가 괜찮게 끝날리는 없었고 그렇게 끝맺음을 짓고 난다 하더라도 사실 나도 그것이 기분이 좋거나 영 괜찮은 일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정리가 끝나면 일부러 신나는 영화나 좋아하는 영화를 틀었다. 같이 영화를 보는 친구는 슬픈 날에는 슬픈 영화를 본다고 했지만, 그냥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슬픈 날 슬픈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그럼 슬픔을 온전히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신나거나, 좋아하는 영화들을 보면서. 다소 슬픈 감정을 희석해 보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로 슬퍼하는 것보다 어떤 부분에 내가 속이 상했는지를 들여다보려면 전혀 다른 지점에 있어봐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사람들은 때때로 슬픔은 너무 멀리 두려고 하는 것 같다. 혹은 다른 것으로 지워서 덮거나. 

하지만 오늘은 슬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약간의 축복 같았다. 


등급으로 따지면 SSS라거나, S등급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럭저럭 B급의 히어로는 될 수 있는 약간의 축복. 실상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여유가 필요한데 슬프면 여유가 잘 없다. 그래서 여유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마음은 아프지만 그 시간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다소 사랑스러웠다. 다음에 만나면 안녕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적어도 인사는 했으니 서로 그리워하는 감정이나 미련 따위가 남지는 않을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관계를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이고 그걸 온전히 스스로 끝맺음을 한 것이 아닐까 같은 생각이 들면 괜찮아졌다. 하나씩 차분하게 머릿속을 정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언젠가 치워야 하는 어질러진 방처럼 한 번은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오늘의 사랑하는 순간을 적으며 따뜻한 차를 내렸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의 허전한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는 것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슬픈 날 슬픈 영화나 슬픈 노래를 듣는 것도 좋겠지만 가끔은 내 슬픔을 영화처럼 보는 것도 사랑하는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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