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수요일이에요.
작년 여름부터 함께 영화를 보던 친구가 있다. 서로 바쁜 일상에서 수요일 하루씩은 꼭 챙기는 것을 약속으로 두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일정과 일정 사이에 틈이 없으면 아이패드를 챙겨나가서 카페에 앉아 있는 날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영화는 보통 랜덤으로 고르는데 고른 영화가 망하는 날이면 대화가 늘었고 좋은 영화를 고르면 여운을 나눠 가지는데 정말 좋은 영화를 고르면 말도 많아지고 여운도 짙은 것 같다. 오늘이 그랬다.
오늘의 영화는 <방과 후 소다 먹기 좋은 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여름이었다는 말을 처음으로 내 안에서 정의할 수 있었다. 보통은 드라마 같은 사랑을 했을 때 쓰이던 말 같았는데 나는 뭔가 무너진 것을 다듬어 고치고 도약할 때를 여름이었다고 쓰고 싶었다. 아무튼, 소녀 세 명이 나와서 소다 먹으러 가기 클럽을 결성하는 일을 보는 건 정말 즐거웠다. 에피소드가 하나씩 진행될 때마다 대화가 쌓여가는 것은 더 즐거웠다. 영화에서 소녀들이 크림소다 클럽을 만들 때 우리는 매주 보던 영화 클럽에서 이야기가 동시에 밴드의 합주처럼 어우러지는 일이 즐거웠다. 그러다 문득 어릴 때 이야기가 나왔다. 어릴 때 학교 앞 분식점에서 나름 5000원짜리 크림소다가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코카 콜라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것뿐이라 특별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내가 어릴 때라면 십여 년 전인데 비싸기만 하고 별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자주 사 먹었는지 모르겠다고. 근데 이 영화를 보면 내가 왜 그 분식집 크림소다를 자주 찾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별거 많은 세상에 지칠 땐 별거 아닌 것들에게 위로받고는 한다. 영화에 나온 소녀들이 각자의 고충이 있지만 크림소다 클럽 활동을 하면서 하나하나 물리치고 단단해져 가는 것처럼.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까 어른에 입맛에 맞는 크림소다를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겠지.
결국 성장이라는 건 남들과 비교하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마다 성장통이 끝나는 시점들은 다 다르겠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 있다면 힘껏 응원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한 발을 디딜 수 있을 테니까. 상처에 소금 뿌리기보다는 그냥 약 바르고 밴드 붙여주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내가 내 편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문득 오늘의 일들을 무척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뭐 하나 뺄 부분이 없이 오늘이라는 러닝타임이 전부 사랑스러운 오늘의 이름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수요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