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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 블루 Nov 09. 2023

바텐더의 일기(1)

사람들은 전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어.



1년 하고도 조금의 공백 이후, 바에 취업하게 되었다. 동네에 있는 몰트 바였는데 면접을 보고 난 이후에 한 달 정도를 기다려서 스케줄을 받아볼 때의 감정은 새로웠다. 어릴 때는 대학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시작했던 아르바이트의 한 직군이었다. 밤에 일하는 편이 시급에는 유리했기 때문에 시작했던 일 치고는 오래도 끌었고 해 봤던 일 치고는 스킬이 조금 부족한. 대회에도 나가고 여러 가지 수업을 들으며 발전하려던 시간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내가 좋아하는 위스키의 취향을 찾는 것을 제외하고는 실력이 늘거나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서 긴장했다. 때때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바텐더라고 소개하면 멋있다는 느낌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받았는데. 사실 바텐더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공부할 것도 많고, 상호작용에 대한 거부감 낯가림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서서 일하는 직업이고 무거운 병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체력적도 필요한 직종이다. 예전에야 야간에 일하는 일 치고는 시급도 높은 편이라 아르바이트와 투잡으로써의 메리트가 있었다면 최근에는 기본시급이 오른 것에 비해 바의 임금은 오르지 않았고 아르바이트로써도 경험하기 좋을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는 복불복의 직업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시급제 아르바이트라도 취업은 취업이다. 합격소식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를 들뜨게 했다.


첫 출근에서 마주친 손님들의 이야기부터 풀어볼까 한다. 새벽 한 시를 넘겨 늦게 도착하신 분이 계셨다. 이 손님은 바 투어를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방금 전까지 다른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와서 이번엔 칵테일을 마시고 싶다며 갓 파더를 주문했다. 나는 아직 바에서 칵테일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직급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사람에게 처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 맛은 괜찮으세요? "



무난하게 첫 질문을 시작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 네, 갓파더를 좋아해요. "



갓파더는 위스키를 베이스로 사용하고 아몬드 향이 나는 리큐어인 아마렛토를 첨가해 만든 칵테일인데. 업장에 따라 향을 입히기도 하고 취향에 따라 위스키를 선택해서 만들기도 한다. 얼핏 본 메이킹 장면에서 어떤 술을 썼는지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어떤 취향을 가지고 계신지에 대해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는 이렇게 재미있다. 바텐더도 손님에게 술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는데 거부감이 없다면 좀 더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다. 혹은 많은 취향을 배울 수 있다.



" 또 다른 건 뭘 좋아하세요? "

" 저는 커피 좋아해요. "

" 아, 저도 커피 좋아해요. "



평범한 대화, 그러나 특별해지는 건 바라는 공간이 주는 선물일까. 손님과 나는 금방 신이 나서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녀왔던 곳들과 원두에 대해, 그리고 추천 가게를 교환하며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손님이 내게 한 말.



" 그런데 이상하죠? 한국에는 좋은 카페들이 많아요. 자부심이 있는 사장님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왜 스타벅스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



결론적으로 취향을 주고받고 배울 수 있는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곧 자리에서 일어선 손님의 빈자리를 치우며 손님이 두고 간 취향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다음 손님에게도 아마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또 다른 답변을 받게 되지 않을까? 바에서 일한 첫날, 다른 손님들과도 소소하게 대화를 나눴지만 이 대화가 기억에 남아 글로 나오게 된 이유는 아마도 취향에 대한 대화여서 인 것 같다. 취향은 사람을 기억하게 만든다. 그 사람을 대변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일이다.


문득 노트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화는 금방 휘발되고 핸드폰 메모장에 적기에는 왠지 정이 없다. 좋았던 대화들을 적어두고 거기에서 배우는 취향과 레시피를 기록하고 내가 만들어 드리고 싶은 한 잔을 상상하면서 바텐더 일기를 적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기의 형태가 초안에 비해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어떤 이야기들을 전달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일기를 토대로 나는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고, 칵테일에 대한 공부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대화로 알게 된 새로운 취향에 대해 공부할 수 있을 것이고, 내 가사에 녹여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적고 정리해서 한 장면에 대해 적자.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알고 싶은 첫날은 이렇게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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