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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진동이 있었다

by 글 써 보는 의사


태초에 진동이 있었다.


세계의 시작은 눈을 뜨지 않았고

우리도 서로에게 눈이 멀어 있었다


너를 만나기 오래전부터

내 안에 울림이 있었다

눈을 감을 때

비로소 들리는 깊은 떨림이었다


눈은 감기고 입은 닫혀도

귀는 언제나 열려 있었다

항상 너와 연결되어 있으라고


하늘과 땅 사이에는

때때로 바람이 지나갔다


흔들리는 땅의 요람

씨앗의 눈이 잠들 때

나무는 태어날 준비를 하고

바람이 잎사귀를 흔들 때

나무는 비로소 열매를 떨궜다


그래, 잎사귀는

바람의 진동을 듣는

귀로구나


파르르 태양 빛이 떨리던 어느 오후,

하늘과 땅 사이

바람의 진폭은 거세고

너와 내가 서 있었다

손을 꼭 맞잡고


그 손안에 뜨거운,

진동이 있었다

백색광이 너의 배 위를 두드렸고

사랑이 우리 눈을 감기고

귀를 열었다


맞잡은 손으로 또 다른 생명이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모르는 울음이

태초에 눈 뜨고 있었다











10월 10일 꿈을 꾸고 나서 쓴 시입니다

초음파 꿈을 꾸고 쓰게 됐습니다.


그때 느낌이 오는 대로 거칠게 써놨고(보통 이런 때는 맞춤법이나 오타는 신경 안 쓰고 휘갈겨 놓습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진동에 대해 느낄 일이 있어서

오늘 불현듯 마무리지었습니다.



초음파 진단 장비는 초음파에서 되돌아오는 반향을 영상으로 전환하는데

꿈에서 저는 영상이 아닌 소리로 전환하는 초음파를 언급합니다.

(실제로 혈류 속도를 보기 위해 도플러 초음파라는 게 있기는 합니다만, 꿈에서 말한 소리 전환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깼을 때,

진리든 사람이든 깊은 연결은 눈이 아닌 귀로 이뤄진다는 의미라고 깨닫게 됐습니다.

(이 꿈은 추후 소개할게요~ )



과학적으로든 마음적으로든 물질 이전에 진동(파동)이 있습니다.

입자는 진동하며, 파동은 곧 입자가 됩니다


관계도 떨림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마음의 떨림으로 감지합니다.

때로 눈은 착시를 불러옵니다


그럴 때는 눈을 감아 봅니다.

떨림이 커지면 비로소 우리 눈에 보이는 풍경이 됩니다

진실된 사람은 언제나 보기 전에 듣습니다.


무엇이든 태어나기 전에는 진동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말하기 전에 이미 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맞잡은 손에는 눈도 입도 없습니다

오직 전해지는 각자의 떨림만 두 귀로 들을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주파수에 귀를 열 때 그것을-저는- 관계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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