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들 - 1
어느 날 한 남자가
자기 집 마당 벽에
깨진 틈을 발견했다.
- 새 집에 틈이라니 어쩐지 불안한데
그는 그것을 메우려고 했다
여름철 땡볕 속에 애써 틈을 메웠으나
겨울이 되니 다시 깨졌다
눈발에 손이 시린 날
다시 그 틈을 메웠다
이듬해 봄은 따뜻했다
틈을 메워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름이 되자
이번에는 틈이 터졌다
그는 다시 틈을 메웠다
흙손으로 촘촘히
겨울이 되자 메웠던 흙이
다시 갈라졌다
- 그래 누가 이기자 보자
겨울 여름
그러다 봄 가을
사계절 내내
벽을 메우느라 온몸이 더러워졌고
입술은 트고 눈에는 핏발이 섰다
무엇보다 목이 말랐다
이제 지칠 만큼 지친
가을비가 낙엽을 떨구던 어느 날
그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이 짓을 그만두고 싶다고
지친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의 몸이 더러워도
입술이 트고 핏발 선 눈으로
그들의 멱살을 잡고 물을 달라고 외쳐도
그들은 그의 옆에 있었다
발버둥치는 그를
친구들은 침대에 눕혔다
그의 손에서 굳어버린 흙손을 조용히 빼앗아
베개 곁에 놓아두었다
대신 그의 손에 흰 천을 감아두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천이었지만
그는 가시처럼 따가웠다
- 왜 내 자유를 구속하는 거야
몸부림치던 그를
친구들은 말없이 안아줬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온몸을 뒤틀며 벗어나려다가
지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는 포기했다
이제 틈을 메우지 않겠다고,
그렇게 한 해가 지났다.
친구들은 이제 그의 손을 풀어줬다
그는 그 틈을 더 이상 메우지 않고 지내기로 했다
혹시나 싶어 쳐다보지도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가만히 둔 그 깨진 틈으로
뭔가가 비쳤다
촉촉이 반짝이는 무엇인가
그는 가까이 다가가
그 틈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긴 시간을 들여다본 끝에
햇살에 반짝이는 작은 물방울 하나를 봤다
고개 숙여
더 가까이 더 오랫동안
들여다봤다
그 깨진 틈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주 작은 물줄기지만
한 방울씩 한 방울씩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는 홀린 듯 가느다란 물줄기를 쳐다봤다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놀라우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 언제부터 물이 흐르고 있었던 걸까
시간이 흐를수록
물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졸졸졸 맑은 계곡 물이 됐다
그는 그동안 더러워진 몸을 씻고
눈을 닦고 마른 목을 축였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얼굴을 봤다
깨끗한 얼굴과 몸이 물속에 비쳤다
눈은 맑아져 더 먼 곳을 봤고
흐르는 물만큼 갈증도 줄었다
그제야 그는 알게 됐다
깨진 틈은
모든 물줄기가 시작되는 계곡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제 강이 되었고
더 멀리 바다가 되었다
그는 오래도록
그 틈의 바다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시라기보다는 작은 이야기입니다
사실 아파트에 물이 새는 일이 생겼었습니다.
그렇게 겪으면서 보니 어느 곳에나 틈은 있더군요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곳에도요
그렇게 어느 곳에든 틈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고 쓰게 됐습니다
13에 얽힌 소년 이야기를 좀 쓰다 보니, 그 분위기가 이어져 우화처럼 작은 이야기가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