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그 남자 엄마의 믿음
해마다 어김없이 그 남자의 엄마는 신수를 보러 갔다. 아는 언니들이란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자신이 점집 예약을 해놨으니 함께 가자며 사람을 모았다.
작년 초 그 남자의 엄마는 근심을 안고 집에 도착했다. 신수를 보러 가기 전에는 한 껏 기대에 부풀어 궁금한 게 무엇인지 말해보라 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엄마의 기분은 상당히 좋지 못했다. 좋은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한참을 싱크대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다가 나를 힐끗 쳐다보던 눈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네가 나가 벌면 좀 낫다더라.”
흘리듯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그 남자 혼자 벌고 있는 게 못마땅했을 수 있다. 나는 생각했다. 외벌이보다 맞벌이가 당연히 낫지.
다시 그 언니들과 새로운 철학관을 예약했다. 아마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들을 때까지 찾아갈 것이다.
아이는 꼭 낳자고 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양가 부모님께 어떻게 알릴지 이야기를 했었다.
그 남자는 우리 엄마는 사주만 좋으면 오케이라고 했다. 그러면 사주를 보러 가야 한다는 말인가? 생각해 보니 연애 초반에 그 남자가 주말에 엄마를 데리러 지방에 간다고 했었다. 연초에 하는 그 남자의 엄마의 루틴이었다.
결혼이 결정되고 그 남자의 엄마는 그 남자와 나의 사주를 들고 철학관 세 개를 돌아다녔다. 공교롭게도 결혼 날짜가 두 곳 철학관에서 겹치는 날이 있어 그날로 정했다. 다행히도 둘의 사주는 훌륭했다. 그 남자의 엄마가 흡족할 만큼. 언젠가 만나도 만날 사주였고 아이도 많이 낳아서 그 아이들이 더 잘 될 거라 했다.
그 말을 하며 그 남자의 엄마는 자기가 회사 다니던 시절 사장님이 알려준 철학관 할아버지가 그랬다 했다. 그 남자의 엄마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똑똑한 아들이고 그 아들이 현명한 며느리를 데려올 거라고 했다고 했다.
처음 그 남자가 혼전 임신을 말해서 그때 그 할아버지 욕을 엄청 했다. 현명한 며느리는 개뿔. 아마도 당신이 고르고 고르지 못한 그 남자의 여자였기에 더 화가 났었겠다.
‘현명한 며느리’
결혼을 시작하고 저 말을 계속했다.
내가 당신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게 저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나는 그 남자의 어머니의 현명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고분고분 말을 참 잘 들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며느리였다.
첫째 아이를 낳고 아이 이름을 짓기 위해 그 남자의 엄마는 여기저기 철학관을 다녔고 20여 개 정도 되는 이름을 받아왔다. 그중에서도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아 나보고 철학관을 가보라 했다.
이름을 받으면서 아이가 사주가 좋다며 인기도 많고, 공부도 뛰어나서 일찍 부모를 떠난다고 했다. 아직 엎드리지도 못하는 내 딸을 볼 때마다 그 이야기를 계속했고 정말 듣기 싫었다. 이렇게 나에게서 아이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그랬나 보다.
언젠가는 사주를 보러 갔더니 정말 기분이 좋아서 나에게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 남자의 엄마 말로는 점을 봐주는 분의 큰절을 받고 나왔다 했다. 당신의 아들이 크게 될 사람이라고 했다면서. 정말 귀한 아들이 큰 사람이 될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지낼 때. 건강을 조심하라던 말을 듣고 부적을 부치겠다고 했었다. 당시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어 한국에서 내 여동생이 미국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미국으로 오는 내 동생 편으로 부적을 보내려고 했었으나 그러지 못했었다. 한국에 들어와 그 남자의 옷 속에 고이 간직한 부적은 두툼한 서류 봉투 안에 있었다. 내가 아는 부적과는 사뭇 달랐는데 엄청 무엇인가 크고 많아 보였다.
얼마 전 그 남자의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왕래가 없는 것이 벌써 6개월이 흘렀고 그동안 일방적으로 내가 연락을 피했다며 이혼을 요구한단다. 조정이혼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올 해는 이혼을 하긴 하나보다.
그 남자의 엄마가 이혼 날짜라도 받아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