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 세상을 편하게 사는 방법
나는 네가 막을 앞길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얼마나 가진 게 없으면 아이를 두고 권력을 행사하니.
너희 누나가 나에게 ‘너는 니 남편 앞길을 막았어’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 지 알았다. 내가 누군가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굉장한 사람이었다니.
집에서 아기 키우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내가 니 앞길을 막았다는 소릴 들었다. 허리에 보조기를 차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에게 저게 할 소리인가?
도대체 니 앞길을 내가 어떻게 무슨 수로 막았니?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지방 국립대에 티오가 나왔다. 서류 심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그때 그 남자와 통화를 했었다.
“어. 거기 원서 넣었고 면접 준비하고 있어 붙었다고 해서”
“어떻게 알았어?”
“비밀. 바쁘니까 전화 끊어 “
그 남자의 지도 교수님은 Y대 학부 출신이다. 물론 박사 학위는 해외에서 받았다. 그 남자는 지도 교수님이 Y대 출신이기에 Y대 그룹사람들과 잘 알고 있고 교수가 된 누나들과 친하다고 했다. 교수를 누나라고 부른다고 자랑을 했다. (하… 내 친구 내 후배도 다 교수 됐단다. 네가 그렇게 무시하는 지방대 사람도 교수가 된단다.) 그 남자는 지도 교수님의 후광에 마치 자기도 Y대 사람처럼 굴었다. 그 남자는 흔히 말하는 인서울 18개 중 끝자락에 있는 학교 박사이다.
그 남자의 지도 교수님은 그 남자를 일명 교수 메이커로 불리는(그 남자의 말에 의하면) H대 교수님에게 과외를 시켰었다. 발표를 하고 코멘트를 받고. 서류 통과를 하고 결과 발표가 되지 않았는데 1차는 붙었다며 어찌나 으스대던지. 지방 국립대가 우스웠던 모양인지 이미 그 대학교수가 된 줄 알았다.
아마 2차 학과면접을 하고 바로 떨어진 걸 알았을 것이다. 그 남자의 지도 교수님은 매번 선임 연구원 자리 공고가 언제 날거니 준비하라며 공식 발표 전에 언질을 했었다. 물론 면접을 보고 오는 길에 그 남자의 지도 교수님은 아쉽게 떨어졌다고도 했었다.
현재 그 남자가 지원했던 교수 자리는 S대 출신으로 우수한 연구 실적을 가지고 있다. 학교 순위뿐 아니라 가지고 있는 연구 실적이 월등한 연구자였다.
아쉽게 떨어졌다고 말하려면 경쟁자가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해야 할 텐데 그냥 압도적인 연구 실적이었다.
이미 막혀 있는 앞길인데 누가 누구의 앞길을 막았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당신의 귀한 동생의 무능도 내 탓입니까?
집안사람들이 남 탓을 즐긴다. 참 살기 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