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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5시간전

감정(感情)에 관하여


연령대별로 차이는 좀 있지만 요즘은 직접적인 전화통화보다는 주로 문자 메시지(SNS 문자톡)를 더 선호한다는 말을 접하고 나서 떠오른 단상을 글로 한번 써보려 한다.


인터넷과 함께 ‘문명의 이기’로 불리는 스마트폰은 말 그대로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용(portable) PC나 다를 바 없다. 다양한 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가 익숙지 않은 고령층 일부를 제외하면 오늘날 스마트폰과 그 ‘스마트한’ 기능들은 우리 모두에게 필수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각설하고, 어쨌든 문득 든 생각은 왜 요즘 사람들은 직접 통화[voice talk]하기보다는 문자 메시지를 더 선호할까라는 물음이다. 그에 관한 답들은 이미 즐비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바쁜 세상에 살다 보니 다들 그 ‘편의성’을 제일 먼저 든다. 문자로 주고받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비교적 크게는) 구애받지 않고 (또는 서로에게 실시간 방해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을 수 있고, 또 사안에 따라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대응(대답)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필자도 위에 언급된 ‘편의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과연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바쁜 세상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바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만 있을까라는 물음이다.(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정신없이 많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며 1분 1초를 다투는 특별한 직업군에서 일한다고 하더라도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 잠잘 시간들은 있지 않을까?)


단체로 무슨 단톡방을 만들어 어떤 모임 약속이나 이벤트 일정을 (또한 꼭 기억해야 할 정보나 사진을 메모하고 저장하기 위해) 주고받으며 연락하고 조율하는 게 아니라면, 예를 들어, 오랜만에 어떤 친구랑 약속 잡으려 “너, 이번 주말에 시간 되니?”라고 물어보는 데도 문자로만 연락해야 할까?


혹자는 시간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나 시간 없다고 거절하는 사람이나 “편리하게” 서로를 크게 방해하지 않을 수 있어 좋다고도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문자를 주고받는 그때 그 순간 서로의 감정(상태)을 숨기려 - 또는 방해받지 않으려 - 한다고 본다. (어쩌면 거절하는 사람 입장이든 거절당하는 사람 입장이든 어떤 당혹스러운 목소리톤이나 어색하고 떨떠름한 심정과 쑥스러운 분위기를 좀 감추거나 피할 수도 있고)


얼마나 크고 넓은 평수에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집에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가족 간의 대화들도 다 ‘카톡’으로 하는 세상이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어쩌면 꼭 전달하고 또 꼭 전달받고 기억하고 문자로도 저장해 두어야 할 사안[사실 전달]을 주고받는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최소한 (대면하는 대화와 문자로)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이모티콘 몇 가지나 “ㅋㅋ”나 “ㅠㅜ”만으로는 나의 감정도 다 표현 못하거니와 상대방의 (미묘하고도 복잡 다양한) 기분이나 감정 상태도 다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필자가 너무 예민한 것인지 아니면 감수성(感受性)이 뛰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로는 대화 중에 훨씬 많은 감정(선)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우리의 (현재의) 감정을 감추는(숨길 수 있는) 대화만을 하려고 할까? 심지어 아주 사적인 관계인 가족, 부부, 연인 간 사이에서조차도 우리는 어느새부턴가 서로에게 감정(상태)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거나 피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지금 기분이 안 좋다거나 좀 우울하다거나 혼자 있고 싶다거나 말하기 싫다는 감정을 그대로 내색하기 어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부모는 자신들이 평생 키워온 자식들과 통화할 때 그 전화기 넘어 들리는 목소리(톤)만 들어봐도 벌써 안다, 얘가 지금 기분이 좋은 상태인지, 아니면 좀 별로인지. 아니면 지금 피곤하거나 감기 기운이 좀 있거나 아픈 지도. 그래서 현명한(?) 자식들은 아플 땐 걱정하실까 봐 부모님과 직접 보이스 통화는 안 하려고 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약 3년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COVID-19) 팬데믹 시기 동안 매일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면서 그 마스크로 인해 얼굴을 가리고 표정을 가리며 살다 보니 어떻게 좀 ‘뻔뻔해짐’을 느낀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사람들이 마스크로 물리적으로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 온라인상 ‘익명성’이 주는 “용기”(?)처럼 -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표정[감정]을 감출 수 있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IT기업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기술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미래기술, 바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다. 지금 수준은 단지 사람과의 경기에서 체스, 장기 또는 바둑을 이겨내는 정도가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딥러닝(Deep Learning)과 더불어 이를 적용한 챗봇(chatbot), 챗지피티(ChatGPT)를 통해 우리가 지금 위협받고 있는 것은 비단 가까운 미래에는 현재 인기 직업들 중 많은 분야가 이런 AI기술에 의해 대체되어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다. (미래에 사라질 위험이 있는 직업군 순위 자료를 보면 섬뜩하지 않은가?!)


이미 화제가 된 바 있는 어느 사진작품 대회의 1위 수상 작품이 인공지능인 AI기반에 의해 “제조”되었다는 폭로(暴露)는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않을 정도다. 예술적 미를 추구하는 미술 그림작품의 회화 세계뿐만 아니라 창작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도 챗GPT가 다 써주는 소설작품은 이 시대에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그렇다, 이미 우리가 사는 동시대의 인공지능은 그림도 잘 그리고 사진도 1위로 입상할 정도로 잘 “찍고” 노래(음악)도 잘 만들고 창작소설이나 드라마 대본도 잘 써낸다.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작가)들은 몇 마디 키워드와 명령어만으로도 인공지능 챗GPT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장편소설 한 권을 뚝딱 써내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제작”된 소설의 내용이나 구성 등 그 수준이 기성작가들도 깜짝 놀랄 정도이며 문제는 그 기술과 정교함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물론 의학적 진찰과 치료 분야, 미래의 법률 해석과 판결 시 적용 등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인류는 과연 스스로 만들어낸 로봇(robot)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을까? 이 물음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인류 전체의 생존에 파멸을 가져올 ‘복제 인간’의 허용 여부만큼이나 윤리적인 문제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이와는 별개로, (지금의 수준에서 보더라도) 사람이 로봇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는 분야는 아직은(?) 다행히도 주로 인간의 감정[emotion, feeling, sentiment]이 개입되는 분야들이다라고들 말한다.


우리는 사람이 너무 감정적이지 말아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다. 또한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대개 우리의 행동과 판단을 결정하기에 앞서 지극히 감정(상태)에 의존하는 편이다. 감정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상태)을 잘 파악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현재의 감정 또한 무미건조하게 메말라가고 (또는 거듭된 “불감증”으로) 종국에는 Yes/No처럼 ‘기계화’되어 가고 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필자 또한 평소 감성과 감정 표출에 서툴거나 약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도 되돌아보게 된다. 사람에겐 ‘희로애락’(喜怒哀樂) 외에도 수십수백까지의 감정[emotion, feeling, sentiment]과 감정선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뻐하는 ‘희’(喜)와 화만 내는 ‘노’(怒)만 남을까 봐 걱정이다.(우리는 평소에도 가만히 보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거나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간혹 보듯이.)


이제부터라도 꼭 급한 일이 아니더라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가끔씩은 ‘문자톡’보다는 ‘보이스톡’으로 더 많이 내 목소리도 들려주고 상대방 목소리도 들으며 직접 통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앞으로 인류에게 남을 것이라곤 사랑이라든지 설렘, 또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이타심(利他心), 공존 공생의 동병상련(同病相憐)과 그저 소소한 일상의 감정들뿐 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감정(感情) : 어떤 일이나 현상, 사물에 대하여 느끼어 나타나는 심정이나 기분.

희로애락(喜怒哀樂) :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네 가지 감정. 곧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Daum [어학사전])

챗지피티(ChatGPT) : 인공지능 기업 오픈에이아이(OpenAI)에서 개발한 대화형 언어 모델. ‘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약자로, 광범위하게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전 학습되어 주어진 질문에 문장으로 생성된 답을 제시하는 인공지능을 뜻한다.(Daum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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