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단상임을 전제로 이 글을 쓴다.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다 읽어보시고 판단은 독자분들 각자 개개인에게 맡긴다.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렇게 뜸 들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이 글 속 물음이 좀 어쭙잖게 들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행복 관련 글을 쓰던 중 '작가의 서랍'에만 저장해 두고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아직 발행하지 못한 단상들 중 하나를 짧게나마 여기 발행글로 기록해 두고자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안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 재난과 같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도 운전을 하며 가다가 교차로에서 단지 뒤따라오던 운전자의 부주의만으로 내 차가 갑자기 추돌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또는 어떤 일로 금전상 큰 손실과 손해를 입거나 갑자기 몸이 아프다거나 혹은 그보다 더한 어떤 예상치 못한 불행(不幸)한 일을 겪고 힘들어하게 되기도 한다.
이 글의 구체적인 계기는 다음과 같다.
집안에 가족 구성원 중 아픈 사람이 있을 때 몸이 불편한 사람을 남겨 두고 (돌볼 사람은 따로 마련해 두고라도) 며칠 동안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냐라는 물음에 필자는 한동안 오래 고심한 적이 있었다.
이 물음과 관련된 수십여 권의 책들도 읽어가며 그에 관한 답을 찾고자 나름대로 숱한 밤을 지새우며 힘들어했다. 그 물음은 어쩌면 내가 가진 어떤 불행(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과연 나는 '행복'해도(행복감을 느껴도) 되는가라는 어떤 윤리적 고뇌와 맞닿아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우리 몸이 백 프로 핏(fit)해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몸에 이리저리 이 구석 저 구석 아픈 데도 생기고 병원도 가서 진찰도 받아야 하고 치료도 받아가면서 그래도 일상은 일상대로 살아가야 한다.
완벽주의자라서 모든 사소한 일까지도 매사에 백 프로 완벽하게 처리하고 모든 일들이 다 깔끔하게 잘 정리정돈되어야 속이 시원하고 마음이 편하고 그다음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성격들도 있다. 하지만 꼭 무슨 완벽주의자 운운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행복할 수 있으려면 과연 우리에게 '완벽하게' 불행(불행한 일)이 전혀 없어야만 가능한 것인지 스스로에게도 물어보게 된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밥은 먹어야 하고 그 안 좋은 일을 해결하거나 최소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심신을 가다듬고 건강을 챙겨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 불행한 일 앞에서도 정신적으로도 절망(絶望)하지 않고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끝까지 정신적 의지(意志)를 제대로 다잡고 살아가야 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불의'(不義)와 타협하거나 협상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불행(不幸)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의지를 포기하거나 체념(諦念)하는 것도,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굴복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합리주의'나 '개인주의'를 논하거나 여기에 접목하려는 것도 아니다.)
A라는 내 불행이 해결되고 해소되어야만 B라는 내 행복이 시작될 수 있는 일들도 있다. 하지만 A라는 불행 때문에 B라는 내 행복마저 저버려야만 할까라는 물음 앞에 고심하고 있다.
물론 그 A라는 불행이 "소소한" 불행인지 아니면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끔찍한 불행인지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은 개인적인 영역일 것이므로 필자가 말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개개인이 처한 불행(불행한 상황)을 "작은 불행, 큰 불행"으로 나눌 수 있는 어떤 기준도 없거니와 아무리 주관적이고 개인적 관점이라 하더라도 스스로도 쉽게 구분하거나 이원화시키듯 나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도 불행(不幸)을 '타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불행은 그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나에게 절대 생겨서는 안 될 사안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행을 (아무리 "소소하다" 하더라도) 결코 조금이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자초(自招)하지 않았거나 나에게 아무런 귀책사유(歸責事由)가 없다면 더더욱.
앞서 글 서두에 언급했듯이 혹시라도 이 글이 큰 고통과 어려움에 처하신 독자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은연중에 우리 일상생활 속 "작은" 어려움들 때문에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쩌면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보다 큰 일상의 행복'(예를 들면, 가족 간의 사랑 그리고 형제자매 간의 우애와 인간관계 등)의 중요성을 간과(看過)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과연 불행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이 물음은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일상의 행복은 불행이 전혀 없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불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려 애쓰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귀책사유(歸責事由) : [법률] 법률상의 불이익이나 책임 따위를 부과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주관적 요건. 의사 능력 또는 책임 능력이 있어야 하며,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 한다.(Daum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