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석류맛을 찾아서
어릴 적부터 복잡한 도회지(都會地)에서 “아스팔트킨트”로만 자라온 필자는 큰 마당이 있는 집이 참 부러웠다. 좀 구체적으로는 나무와 꽃과 풀이 자라는 정원(庭園)과 텃밭이 있는 그런 큰 마당 말이다. 어린 마음에 - 물론 부동산 시세 걱정 같은 것은 안중(眼中)에도 없었지만 - 나도 넓은 마당이 있는 그런 집에서 살아 보고 싶었다.
유년시절 콘크리트 바닥에서만 자랐다고 해서 자연(自然)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의 매년 여름방학이면 시골 외갓집으로 놀러 가서 외사촌들과 온 동네 숲이며 산으로 또 강가로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집과 학교만 왔다 갔다 하던 필자에게 시골 풍경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도심 속 동네 놀이터에서 모래 만지며 노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필자에겐 - 비록 여름방학 며칠 동안만이었다고 해도 - 시골 마을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흙을 밟고 또 흙을 만지며 논다는 것은 확실히 새로운 체험이었다.
어쨌든 어린 시절 숙제 같이 한다며 어느 날 방과 후 그 당시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던 단짝 친구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친구집에 가보니 거실에 진열된 수많은 상장과 상패, 고급스러운 액자 속 풍경화나 수묵화(水墨畵) 그리고 알 수 없게 흘려 쓴 초서(草書)며 동양화가 그려진 도자기 보다도 필자는 그 집 거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정원이 더 부러웠다. 바로 그 친구가 나무와 꽃과 풀이 자라는 그런 큰 정원이 딸린 집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정원에는 열매 맺힌 과수(果樹)들이 몇 그루 있었는데 그땐 그 과수가 무슨 열매를 따먹기 위함보다는 "좀 있는 사람들"의 '관상용'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혹시 나중에 과실주 같은 술 담그는 데 쓸려는 용도였는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 그 친구집 마당 한편에는 크게 자란 무화과나무와 골목길까지 향을 가득 풍기는 커다란 모과나무도 심어져 있었다. 그 친구가 따준 검붉은빛 도는 무화과 열매 하나를 먹어보니 입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그 부드러운 식감과 단맛이 너무 좋았다.
거기엔 큰 석류(石榴)나무도 한 그루 서있었는데 마치 사과처럼 붉은 열매가 열려 있었다. 그 열매도 따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그 친구는 (엄마한테 혼나기 때문에 안된다면서도) 손이 닿을락 말락 하게 높이 달려있는 석류 몇 개를 따주었다. 그렇게 딴 석류를 과도(果刀)로 반을 가르니 옥수수 알갱이처럼 속이 빼곡하게 차있었는데 그때 본 강렬하게 붉은빛을 띠는 그 석류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노란 오렌지를 난생처음 접했을 때와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렇게 친구가 딴 석류는 그 당시 아직 좀 덜 익었는지 아니면 원래 신맛이 너무 강한 탓인지 그 친구는 먹다가 도중에 뱉어내기도 했지만 필자에겐 그 새콤한 신맛의 석류가 다른 어떤 젤리나 사탕 또는 맛있는 과자 보다도 더 입맛을 자극하는 맛이었다.
그 경이로운 맛에 침을 흘려가며 또 함께 웃으며 입안 가득 이가 벌게질 때까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이후로 나는 그와 같은 맛있는 석류를 다시 먹어보고 싶었지만 좀체 어디서도 먹어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필자는 한동안 세상 모든 석류는 다 신맛이 강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석류가 신맛만 있는 게 아니라 단맛 나는 것도 많음을 알게 된 것은 세월이 아주 한참 더 많이 흐른 뒤였다. 아주 간혹 마트에서 석류를 몇 개 사와 집에서 먹어보면 대개는 신맛보다는 단맛이 많이 나는 석류가 대부분이었다.
아마 어린 시절 처음 먹어본 신맛이 아주 강한 그 석류맛 때문인지 (필자 개인적 느낌으로는) ‘석류 본래(本來)의 맛’이라면 오히려 좀 시큼할 정도로 시큼 새콤한 맛이 많이 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달다’는 말이 모든 과일의 경우에 다 ‘맛있다’의 동의어(同義語)가 될 수 있을까?
여담이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채소’로 분류되는 생토마토를 먹을 때 토마토가 ‘단맛’이 별로 없다고 해서 일부러 ‘설탕’을 뿌려 먹지는 않는다. 물론 본연(本然)의 맛을 좋아하는 것도 또는 무엇을 첨가(添加)해서 먹는 것도 다 개개인의 취향이고 자유로운 선택일 뿐이지만.
필자는 지나가다 매대 앞에 놓인 튀르키예산(産) 석류를 보고 살까 말까 괜히 고민 중이다. 과연 이 석류는 신맛일까, 아니면 단맛일까? 대부분 과일은 ‘단맛’만을 “좋다”라고 규정하고 또 그렇게 찾고 있는 세상이지만 - 과일 가게도 어디서나 이 과일은 “달다”라고들만 말하지만 - 필자는 여기서 아직도 그 추억 속 신맛 강한 석류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입에 닿자마자 그 새콤한 맛에 침이 솟아날 정도로 신맛이 강한 석류를 먹고 싶기 때문에 말이다.
어쨌든 장 보러 나왔다가 우연히 마주한 석류는 잠시나마 유년시절 그 석류맛의 추억을 떠올려 주기에 충분했다. 그 추억 속 석류맛을 생각하면 그 시절도, 동시에 그토록 넓은 집에 살던 그 친구도 떠오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입 속 가득 침이 고이는 것만 같다. 갑자기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실은 요즘 새콤한 맛은 조금만 먹어도 금방 얼굴을 좀 찌푸리게 되고 말지만 그래도 때로는, 아주 가끔씩은 옛 추억 속 그 ‘신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또 그렇게 순수하게 풋풋하기만 하던 유년시절이 문득 몹시 그리울 때가 있다, 가슴이 시리도록. 오늘은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