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L 창작 시(詩) #225 by The Happy Letter
지난 밤새 사람들이
산책길가 울창하던 그 나무들 무자비하게 다 잘라버렸네요
겨울 땔감을 마련하려는 건지 길을 넓히려는 건지
날카롭게 잘려나간 단면(斷面)들
그 몸서리치게 끔찍한 광경을 보니
만나기도 전에 먼저 떠나버린 당신* 생각이 났어요
당신이 떠나신 이후로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당신을 ‘도발’(挑發)이라 했지만
쳇바퀴 보복 속 송두리째 잘려나간 생명 앞에서 조차
끝까지 침묵하는 그 또 다른 폭력에 대해
사람들은 여전히 말이 없네요
긴 겨울밤 하얗게 지새우며
당신이 남긴 목소리 이제라도 한 장씩 다시 들춰보려고 해요
밤에 누우면 악몽(惡夢)으로 나타날까 두려워
뉴스를 제대로 못 쳐다보던 나는
그 고통에 비명 지를 새도 없이 죽어간 그 나무들
피조차 흘리지 못한 채 녹아버린 그 주검들
그 흐릿한 사진 한 장 보내드릴 뿐입니다
그 쓰라린 상처 바로 앞에 두고도
무거운 발길을 애써 재촉할 뿐입니다
by The Happy Letter
*Winfried Georg Sebald (18 May 1944 – 14 December 2001) : 독일의 작가이자 문예학자
註) 표지 사진 [Luftkrieg und Literatur : Mit einem Essay zu Alfred Andersch] (Fischer 2001) (초판은 1999) by W. G. Sebald (번역본 <공중전과 문학> W. G. 제발트, 이경진 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