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L 창작 시(詩) #233 by The Happy Letter
처음부터 적을 게 너무 없어 고심했던 걸까
뭐라도 적고 나면 너무 부끄러울까 봐 망설였던 걸까
밤늦게까지 쓰다가 또다시 찢고 마는 연애(戀愛)편지마냥
이십몇 년 살아온 그 시간 동안 사랑했던 모든 순간들
그 종이 한 장엔 다 적을 수 없어
나는 그때까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 미안해했던 걸까
나는 싱클레어Sinclair*만 흠모(欽慕)했었다,
진정 그것 밖엔 없었다 내놓고 적지도 못한 채
나는 그 낡은 책상에 지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새날이 훤히 밝아올 때까지
입사 지원서(入社志願書) 봉투에
밤새 뚝뚝 떨어진 내 애련(哀憐) 말라붙은 그 이력서 한 장
나는 끝내 동봉(同封)하지 못하고 말았다
by The Happy Letter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데미안》(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