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하고 나서 카페를 둘러보더니 바깥바람이 많이 쌀쌀해졌다며 볕 좋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창을 뚫고 안으로 내리쬐는 온기가 따스했다.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 있으니 눈 감으면 금방이라도 그냥 잠들어 버릴 것 같았다. 대뜸 긴긴 겨울 무얼 하며 보낼 거냐고 그가 물었다. 내가 바로 말을 건네지 못하고 그냥 쭈뼛거리자 그는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떠날 거라고 했다. 인생 뭐 있냐, 남은 여생 맛있는 거 먹고 가보고 싶은 데 여행 다니고 뭐 그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라고도 했다. 근데 여행을 앞둔 들뜬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냥 무심코 내뱉는 말투 같았다. 다음 달에 해야 할 무슨 과제가 있다는 듯이 들렸다. 그가 갑자기 영화이야기를 했다. 룸 넥스트 도어*를 봤냐고 물었다. 나는 어디 비행기 타고 가다가 비몽사몽 간에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무슨 범죄 스릴러 영화 아니었느냐고 얼버무리니 그는 대답 대신 피식 웃으며 창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실은 나도 네 얘기가 듣고 싶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정작 그 커피가 나오니 일부러 식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게 문득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부신 가을햇살을 받으며 커피가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스페인 영화[룸 넥스트 도어]The Room Next Door(2024)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