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숨쉬는 땅
SF소설 《무의식、통제사회》
성산의 새벽은 젖은 흙냄새로 시작되었다. 지하로 이어지는 동굴 입구에서 차가운 공기가 불어왔다. 이끼 낀 바위 표면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김선주 박사는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은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처럼 피곤해 보였다.
"늦었군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공명이 다시 시작되었어요. 지하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어요."
서연이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이 차가웠다. 관자놀이의 흉터가 다시 푸르스름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김선주 박사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진해월이 앞장섰다. 그녀의 손에 든 염주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류진성은 뒤에서 조용히 계측기를 확인했다.
"이상해요." 그가 중얼거렸다. "공명석의 진동이... 너무 강해요. 마치 이 섬 전체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벽면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둔중한 소리가 퍼져왔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심장소리 같았다.
"봤어요." 서연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김선주 박사님이 본 것을... 나즈라가 숨겨둔 진실을..."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내가 그녀를 붙잡았다. 차가운 벽에 기댄 채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이곳은 처음부터 그들의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의 것도 아니었고..."
동굴은 점점 더 깊어졌다.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우리의 발걸음을 따라왔다. 그것은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나즈라의 기하학적 패턴이기도 했다. 그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여기예요." 김선주 박사가 멈춰 섰다.
동굴이 넓어졌다. 천장이 높아지더니 거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그것을 보았다.
거대한 수정처럼 빛나는 기둥. 그것은 공명석이었지만,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달랐다. 강화도에서 발견된 것은 이것의 파편에 불과했다. 기둥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맥동했고, 그 안에서 무수한 이미지들이 흘러넘쳤다.
"만년 전..." 진해월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처음 온 건 나즈라가 아니었어요."
기둥 주변으로 둥글게 새겨진 문양들. 그것은 분명 나선형이었지만, 나즈라의 것과는 달랐다. 더 자연스럽고, 더 원초적이었다. 마치 우주의 시작처럼.
"그들이 왜 이 땅을 선택했는지 이제 알겠어요." 김선주 박사가 말했다.
"이곳은... 최초의 의식이 깨어난 곳이에요. 인류보다 먼저, 나즈라보다 먼저..."
그때였다. 서연의 몸에서 푸른빛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투명한 눈물이 아니었다. 푸른빛을 띤 액체였다.
"보여요..." 그녀가 속삭였다.
"우리가... 우리가 진짜로 누구인지..."
나는 그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그 순간 나의 의식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명석에서 쏟아지는 이미지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우리가 본 것은 시작이었다.
수십억 년 전, 이 땅에 처음 의식이 깨어났을 때의 순간. 그것은 인간도, 나즈라도 아닌 무언가였다. 순수한 의식 그 자체. 이 땅이, 이 섬이, 이 행성이 처음 눈을 떴을 때의 기억.
나즈라는 그것을 찾아 이 땅에 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최초라 생각했지만, 여기서 더 오래된 의식을 발견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들은 이 기억을 봉인하려 했다.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실패했어요." 서연의 목소리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의식은...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그것은 흐르고, 퍼지고, 자라나요. 마치 이 땅의 화산처럼..."
갑자기 동굴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공명석의 빛이 강해졌다. 벽면의 문양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제 돌아올 수 없어요." 김선주 박사가 말했다.
"우리가 이것을 깨워버렸으니까요. 최초의 의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진해월이 염주를 높이 들었다. 오래된 나무 구슬들이 푸른빛을 반사했다.
"이제 선택해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나즈라처럼 이것을 두려워하고 통제하려 할 건가요? 아니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연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몸에서 나즈라의 푸른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다른 빛이 그녀를 감쌌다. 더 오래되고, 더 근원적인 빛.
"받아들이는 거예요." 서연이 말했다.
"우리의 진짜 모습을.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공명석이 더욱 강하게 빛났다. 그 빛 속에서 나는 보았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그것은 두려움이자 희망이었다. 끝이자 시작이었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땅의 심장이 계속해서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