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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재 박종익 Dec 02. 2023

납골당

2023 고양문학 원고발표

납골당


                                   우재(愚齋) 박종익

태풍은 본래 어둡고 슬픈 족속이다
제멋대로 먹구름을 쓸어 삼키기도 하고
발을 빼며 눈물을 뱉어내기도 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색깔을 맞춰보려는 것과
캐러멜을 혼자 사러 간다는 것은
눈물 분포도와 서러운 상관관계가 있다
아버지께서 다시 사 오신 새 로봇은
아무리 뜯어보고 붙여봐도 알쏭달쏭했다
눈에는 새것이 헌 것보다 좋아 보여도
턱을 괴고 있는 손은 망설이게 마련이다

오른팔이 고장 난 태권브이 로봇이
어둠을 뚫고 꿈속에 날아왔을 때
사실 더는 로봇이 아니었다
분명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이나 기계나 사람 손을 타면
습성이 길들 여지고
절로 숨결이 느껴진다
말을 붙이면 대답도 하고
떨어지면 보고 싶다고 안달이다

먹구름 태풍 옆구리 근처도 못 가본
고물 로봇들이 가만히 잠들어 있는
다락방 미닫이문을 열면
아직도 손끝에서 묻어나오는 그 시절
태권브이 로봇이 먼 잠 깨고
일어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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