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신작, 동양 판타지를 빙자한 소년의 성장스토리
작품성과 스토리에 대해 이해가 부재한 비판이 가득하여 지브리 팬으로서 한 작품이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써 보는 작품에 대한 해석이다. 필연적으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영화를 감상한 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며 해석은 진지한 언니의 사견임을 밝힌다.
이 작품은 판타지를 빙자한 소년 마히토의 성장이야기이다. 왜가리, 노파들, 미지의 탑, 불을 사용할 수 있는 여신 히미, 앵무새 등 주인공이 성장할 동기를 주는 다양한 요소들이 스토리를 만들어 가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마히토라는 11살 소년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죄책감을 극복하고, 이모를 새엄마로 받아들여 성장하는 것이다.
영화는 11살 소년 마히토가 감당하기 벅찬 현실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전쟁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불타는 마을 속 혼란스러운 환경에 지금이라면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의 소년인 마히토가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보살핌 없이 지내고 있다. 그리고 한밤 중 엄마가 있는 병원의 폭격 소식에 잠에서 깨어나 엄마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지만 소년은 무력하고 전쟁은 한창이다.
시신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막연하게 엄마의 죽음을 짐작하는 마히토는 준비도 없이 엄마의 여동생인 나츠코 이모와 아버지가 결혼하여 그녀가 새엄마가 된다는 사실과 배 다른 동생까지 생긴다는 소식을 접한다. 게다가 살고 있던 도쿄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며 엄마와 나츠코 이모의 본가가 있는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
웅장하지만 이질적인 저택에서 군수공장을 하는 성공한 아버지를 둔 그는 엄마를 막 잃은 불안한 소년이다. 첫 등교를 기세등등하게 할 수 있도록 아버지가 자동차로 데려다주지만 촌스러운 아이들의 소소한 텃세까지 있는 시골 학교는 마히토에게 불만스럽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이모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위기의식도 느껴진다. 그는 하굣길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길가의 돌로 자기 머리를 찍는다. 11살, 소년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나이이다. 어른스럽고 모범적인 어린이로 보이지만 이 장면에서 소년이 얼마나 불안하고 위기에 처해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모의 실종과 더불어, 모험으로 이끄는 매개체인 왜가리가 엄마가 사실은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주인공을 미지의 탑으로 가게 만드는 확실한 동기를 준다. 그곳에는 엄마가 남긴 메시지가 있다. 탑 속 세계에는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들과 죽은 것들로 묘사되어 수동적으로 존재하는 펠리컨, 앵무새 등이 있다. 환상의 공간으로 넘어오기 전 발견했던 엄마의 자필 메모가 적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은 엄마가 소년을 키우며 전하고 싶었던 죽은 존재들과 대비되는 주체적인 삶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불의 여신으로 관습을 상징하는 펠리컨과 앵무새에게서 생명의 탄생을 수호하고 소년이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던 히미는 앵무새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현실로 돌아가는 문을 앞에 두고 마히토에게 새엄마가 되는 나츠코를 미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마히토가 스스로 불안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히미에게는 임신한 여동생인 나츠코가 있는 공간을 통해 아들이 새로운 엄마와 가족을 받아들이도록, 그리고 마히토의 친엄마인 자신의 입으로 그들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도 괜찮다는 뜻을 전한다.
마히토는 나츠코를 새엄마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악의’를 극복했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신은 그의 순수함을 인정하여 핏줄이라는 권한과 신의 역할이라는 책임을 가진 자신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을 소년에게 권하지만 그는 현실에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현실의 문을 앞에 두고 히미코가 아들 마히토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자신의 죽음으로 전하지 못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보다도 마히토의 탄생과 성장이 가치 있었음을 이야기하며 아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그의 성장을 응원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짧지만 마히토를 만날 수 있는 여정을 선택한다. 엄마의 죽음을 극복한 소년은 성장했고 새로운 가족은 삶을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언젠가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래서 판타지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소년의 성장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이 흥미로웠고 작화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몇몇은 지나치게 철학적이고 추상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지브리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재밌었다면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의 ‘그린나이트(2021년)’를 추천한다. 판타지를 표방하지만 스토리는 명확하고 조화로운 색채에 영상미도 훌륭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