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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Dec 18. 2023

여행 갈 수 있을까?

재시와 유급이 있는 약대생인데요

우리 여행은 준비과정에서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가 이렇게 첫 문장을 쓸 수 있었다면 이번 편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간단히 소매치기 방지를 위한 팁들만 몇 가지 적고, 여행지를 선정하는 과정 정도만 적는 것이 구독자 수를 늘리는 한 가지 방법이겠죠. 하지만 이 여행은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고, 같이 여행을 가는 친구(:Y 씨) 역시 여행기록의 첫 문장을 거짓말로 시작하지 않기를 바라서요. 우리는 해야 할 말이 많고, 저는 읽히는 것보다 쓰는 것에 의미를 두는 편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우리의 여행준비 과정에 관심이 없을 것을 알지만 그냥 기록하고자 합니다. 여행준비과정은 꽤 다사다난해서요.



1. 금전적 문제

  우리는 1년간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이번 여행을 준비했다. 분명 우리의 예산은 처음에는 공동경비 350만 원 + 개인경비 50만 원이었는데, 어느샌가 공동경비 400만 원 + 개인경비 100만 원이 되었다. 사실 원래는 스위스+프랑스 여행이었는데, 그냥 프랑스 여행이 되었다. 스위스 물가는 그만큼 살인적이다. 스위스 숙소 중 위치가 괜찮고 1박에 16만 원 하는 곳은 딱 한 곳뿐이었다. 그곳의 후기에 의하면 그 호텔은 침대가 삐걱거리고 직접 시트를 갈아야 하며, 엘리베이터 벽이 덜컹거린다. 하지만 다른 곳의 가격을 보며 사람들이 다 같이 "이 정도면 괜찮지" 하는 걸 보고, 그 은은한 광기에 질려서 그냥 스위스 여행을 포기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시기의 유럽 물가란 정말 너무 비싸다.


  하여간 Y랑 나는 대학교 2학년의 신분으로 각자 500만 원씩 모으게 되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집 근처 수학학원에서 올해 2월부터 근무를 시작해 11월까지 10개월 동안 근무했다. 여기서 한 320만 원 정도 모았다.  학원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싶다. 정말 귀여운 학생들이었고, 나는 학생들하고 엄청 친했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근무한다는 기분도 안 들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경비가 부족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여행 계획을 짠 건 7월 말부터인데, 이때는 아직 350만 원 + 50만 원의 꿈을 꾸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단기알바로 일급 10만 원인 알바를 한 5일 정도 근무하자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화장품 포장 알바가 하필 나는 되고 Y가 안 되어서 포기했다. Y가 안 되었다고 그만두는 게 이상할 수 있는데, Y는 이런 알바를 몇 번 해봤지만, 나는 이런 류의 알바가 처음이었다.

  대신 나는 수리논술채점 알바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160만 원을 보충했다.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냥 나중에 알바 때 겪었던 이야기들을 모아서 글을 적겠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수리논술채점 알바는 멘탈 강한 분 아니면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2. 학업 문제

  하여간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힘으로 500만 원을 모았지만, 지금 나는 이 여행을 못 갈 위기에 처해있다. 바로, 약대생에게 있는 사악한 제도인 재시험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 학교에는 유급제도가 없다)

12월 캘린더

  나는 12월 12일부터 14일까지 기말고사를 봤다. 재시험에 걸리면 프랑스 여행을 못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생이지만 독서실을 다니며 기말고사 공부를 했다. 사실 평상시에 성실한 약대생은 이런 거 안 해도 되지만, 필자는 불성실한 약대생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전반적으로 잘 봤다. 하지만, 시가 있는 3개의 과목 중 하나인 '약품 미생물학'에서 어쩌면 재시험을 볼지도 모른다. 아직 결과가 안 나와서 글로 이렇게 적는 것도 불안하다. 약학과 모학생의 노력을 보고 교수님이 감동받아 모쪼록 그냥 넘어가주시길 아주 간절히 바라는 중입니다. 최악의 경우는 내가 프랑스에 있을 때 교수님이 재시험을 보겠다고 하는 경우인데, 재시험 대상자가 재시험을  보면 어떻게 되는 건지 나로 실험해보고 싶지 않다.





3. 막내딸&첫째 딸&외동딸의 위엄

  위 제목은 정말로 엄마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 가끔씩 나를 "우리 집 막내딸, 첫째 딸, 외동딸"이라고 부른다. 나는 정말 엄마의 온갖 사랑을 받고 자랐고, 그만큼 집착받으며 컸다. 사랑은 족쇄가 되기도 한다. 상대에게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이끌어낼 만큼 나이 먹지 못했을 때는 더 그렇다. 그래서 엄마는 성인이 된 나에게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진다. 

  엄마는 이번 여행을 정말 많이 반대했다. 엄마와 나의 대화를 조금 들려주자 Y가 기겁해서 "혹시 당일에 집을 못 나올 것 같으면 전날 미리 나와. 내 집에서 자도 괜찮아"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게 속상했다. 겁쟁이인 내가 기껏 홀로 서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엄마가 응원해 주길 바랐다. 부모님의 역할은 감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해 주는 것도 있으니까. 나는 정말 겁이 많은 편이고, 원래 겁쟁이가 뭔가를 시작할 때는 생각할 시간을 길게 주면 안 된다. 겁쟁이는 시간을 길게 주면 혼자 생각하다가, 지레 겁먹고 포기해 버린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 생각했던,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제일 주의해야 할 것으로 여겼던 건 내 마음이었다. 여행 직전에 겁을 지레 먹고 여행을 취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런데 마침 엄마가 온갖 걱정을 하며 여행을 반대하니까, 여행을 가기 무서워졌던 나는 마음이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엄마가 한 말들 중 몇 가지를 옮길까 했는데, 엄마 본인은 전혀 기억 못 하시길래. 그냥 엄마도 진심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행히 Y에게 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멘탈이 흔들린 건 많이 괜찮아졌다.




  나는 천생적으로 독립적인 성격이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불편하고 싫은 사람이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서 독립되고 싶다.

  겁이 나서 가기 무서웠던 여행은 사실 여전히 무섭다. 솔직히 나에게 이번 여행은 어느 순간부터 설렘보다는 공포감을 주었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어서 이번 여행을 마저 준비하게 되었다. 



*다음글은 비행기에서 적게 되겠네요. 일단, 다음 글부터는 글 한 개에 하루를 담는 것이 계획입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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