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디 Dec 12. 2023

궁금한 마음

엄마가 있는 서가, 정은정 글 그림, 파롤앤, 2023.

"요즘 뭐 하고 있어?" 

신기한 일 투성입니다. 

그 질문 한 마디가 진짜로 책이 되어 나올 줄 몰랐으니까요.

외계어가 되어 안드로메다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던 말을

보듬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 정말 몰랐으니까요.

서툴게 내민 손을 잡아끌어 맞잡고 

가만히 이야기 들어줄 분, 또 계시겠죠?

궁금합니다. 


꼼꼼하게 읽고 써준 출판사 서평입니다. 

제 안에서 무한 루프를 돌던 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네가 보지 못한, 찾지 못한 말이야, 자 보이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한 뼘 더 자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턴 조금 덜 외로울 것 같습니다.  


『엄마가 있는 서가』는 엄마와 책 사이를 ‘있음’이 매개하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엄마라는 단어는 가장 사랑스러운 단어이지만 실제로는 엄마, 여자, 딸, 아내를 뭉뚱그려서 부르는 아줌마라는 호칭 속으로 타자들에게는 쉽게 수렴되는 연약한 단어이다. 아줌마라는 호칭 속에는 분명 상대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단정 짓고자 하는 경멸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 정은정은 기혼 여성이 된 후 자신의 일상 속에서 가해지는 작은 폭력들을 쉽게 소화해 내지 못해서 그 폭력들을 자꾸 되새김질했다. 소처럼 뱉어 내고, 되씹고, 일하고, 잊으려 애쓰고, 납득하고 받아들이려 애썼지만, 그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가 몸과 마음이 아파졌다. 그 폭력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것은 책이다. 그래서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이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배가와 책수선 봉사를 하면서 책 곁에 있으려고 애썼다. 책은 자꾸자꾸 작아지고, 지워지는 ‘위대한’ 인간을 놓지 않는 힘을 준다. ‘위대한’이란 관형어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가 책 읽는 저자를 부르던 따스한 호칭에 불과하다. 책은, 그 책이 꽂혀 있는 서가는 해변에 써진 ‘위대한 인간’이라는 글자가 지워지지 않게 버텨 주는 방파제 같다.

책의 다른 이름은 음악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하고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쓴 서평이나 예술평이 아니다. 저자 삶의 작은 순간에 책들이 개입하면서, 무시되는 삶에 의미를 되돌려주고 폭력에 노출당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는 책읽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읽는다. 저자는 책을 읽고 쓰는 일을 “온종일 불린 병아리콩을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서 가족들과 먹는 것”이라 부르고 싶어 한다. 따듯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그러므로 아버지가 자신을 불렀던 ‘위대한’이란 농담의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오래전 불문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으나 학위를 끝내지 못해서, 문학으로 밥벌이를 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긴 시간을 문학과 함께 견디며 숨을 쉬며 하루하루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서 그렇게 ‘살아간다.’

나의 자존을 지키며 살아가는 과정은, 엄마 삶의 자존을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낳아 준 엄마로부터도, 길러 준 엄마로부터도, 납득하지 못하는 아픔들을 감내해야만 했던 엄마의 삶을 곁에서 바라보면서, 저자는 쓴다. 엄마의 이야기를, 그러므로 나의 이야기를 책의 자리인 ‘서가’에 불편한 웅크림 없이 편안하게 ‘있게’ 하기 위하여.

작가의 이전글 기다리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