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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 Mar 04. 2024

평화를 비는 마음

빌 에반스, Peace piece

<내 남편과 결혼해 줘>라는 드라마 보셨나요? 저는 봤어요. 어느 날 유튜브에 동영상이 뜨길래 뭔가 했거든요? 제목 참 이상하죠? 처음엔 그래서 안 봤어요. 왜 자꾸 추천하는 거야, 이런 드라마는 클릭 한 번 하면 끝이 없잖아, 하면서요. 그러다 어느 날 집에 들어와 TV를 켰는데 장례식장 식탁에 앉은 검은 양복의 남자 뒷모습이 보이면서 이런 내레이션이 들리는 겁니다. “그날 들은 강지원의 인생은 길게 할 말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미친 듯이 후회했다. 그런데…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결국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이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생애 첫 책이 세상에 나오고, 뉴욕에 다녀오고, 도서관에 지원했다 면접을 보고 또 떨어지고 있었어요. 뭔가 가슴이 텅 빈 것이 글을 다시 쓸 수 있긴 할까, 하는 의심만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죠. 1화는 충격이었습니다. 벚꽃이 흩날리는데 주인공은 암 환자, 가장 친한 친구와 자기 남편에게 생을 탈탈 털린 채 죽어요. 그리고 10년 전 과거로 돌아갑니다. 회사 사무실에서 선 채로 눈 한 번 깜빡하는 사이였죠. 죽음을 맞기까지 미래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이죠.      

봄눈이 내려 나뭇가지가 온통 하얗게 반짝이던 날 저도 장례식장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여동생도 들어와 있었고 지방에서 일하느라 바쁜 남동생도 서울에 일이 있어 와 있던 차여서 삼 남매가 엄마랑 함께 갔어요. 엄마와 여동생은 먼 길 오며 참다 화장실엘 가고 저랑 남동생은 몇 층 몇 호실인지 보려고 홀 가운데 걸린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상주 써진 칸에서 엄마 이름을 찾으면 될 줄 알았는데요, 없더라고요. 외삼촌과 이모, 외사촌들 이름이 보여 알았어요. 2층이었고 막내 삼촌이 내려와 저흴 데리고 올라갔어요. 외할머니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저 결혼할 때 댁으로 찾아뵙고 뵌 적 없으니 25년도 더 됐나요. 아마도 그때쯤 찍은 사진인 것 같았어요.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으니까요. 엄마와 동생들과 나란히 서서 인사를 드립니다. 국화 한 송이를 올리고 절을 했습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큰삼촌이 그냥 묵례만 해도 된다고 했는데 엄마가 절을 원했습니다. 우린 천주교라 큰삼촌 말을 따라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저도 이런 상황이라면 큰절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지만 엄마라고 제대로 부르지 못한 분께 드리는 어쩌면 마지막 인사가 될 테니까요.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큰 외숙모가 먼저 다가와 밥이랑 육개장이랑 먹을 걸 챙겨줍니다. 우리는 모두 일이 바빴어서 첫 끼로 밥을 한술 뜹니다. 아무리 시장해도 뻑뻑할 수밖에 없는 식사입니다. 어릴 때 외가에서 먹던 기억이 아주 희미하게 떠오릅니다. 외할머니는 전라도 분이라 댁에 가면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 문득 엄마가 식모처럼 부엌에서 나오지 못하는 걸 보고 투덜거렸던 어린 내가 떠오릅니다. 그래도 외숙모에게 말합니다.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으셨지요.” “어느 순간 음식 하시는 걸 그만두시더라고요. 요양원에서 마지막 뵈었을 때 먹을 것 좀 없느냐 하시더라고요. 자식들이 가져다 드리는 것만 드셨어요.” 오래 치매 셨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생하셨겠네요.” 하고 말씀드리는 것밖에 뭘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겠더라고요. 이모가 왔어요. 상복을 준비해 놓았는데 엄마가 늦게 와서 물렸다고 굳이 말합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 모신 곳은 너무 멀어서 할머니는 가까운 납골당으로 모실 거라고 합니다. 큰외삼촌이 옆에 와 앉습니다. 못 본 세월이 앉은 눈꺼풀 아래가 붉게 충혈되어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갑자기 눈물이 나서 엉엉 울었다고 했습니다. 울 엄마는 외숙모를 만나면서부터 아니 고속버스를 타기 전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무릎이 너무 아파 절룩거리고 있었습니다. 

막내인 남동생이 마치 형님처럼 ‘크게 의미 두지 말라’며 제게 눈짓합니다. 그래요. 별 의미 없이도 살아지는 게 삶인걸요. 그렇게 말하는 동생 표정에도 난감함이 묻어있습니다. 봄눈이 내려 땅은 질퍽거리고 미끄러울 것이고 언제나 그렇듯 비탈도 오르고 할 텐데 엄마 상태로 장지까지 따라가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전 엄마를 말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동생들은 서두르지도 다그치지도 않고 얌전하게 엄마 결정을 기다립니다. 원로 배우 나문희를 인터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분명하게 말하더군요. “나는 내가 제일 중요해”라고요.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했습니다. 엄마는 장지에 따라가지 않는 대신 조금 더 머물길 원했습니다. 엄마를 기다려 모시고 주차장으로 나오며 동생과 몇 마디 나눕니다. “누가 뭐래도 내 동생들 잘생겼네. 이런 상황에도 참 온화하다. 이 정도면 우린 서로 잘 지낸 것 같아.” 투닥거리던 뉴욕에서 일은 다 잊었는지 여동생이 말합니다. “그럼, 우리가 언제 사이가 안 좋았어?” 우리는 뿔뿔이 헤어지지 않고 엄마 집으로 가 모였습니다. 밤늦게 치킨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신선하고 바삭거리는 프라이드치킨은 더 없을 것 같이 맛있었어요. 그리고 엄마 방에서 잤습니다.     

며칠 동안 엄마는 허전해했어요. 엄마의 엄마는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그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엄마 집에 가면 우린 함께 드라마 이어 보기를 하곤 했어요. 엄마에게 <내 남편과 결혼해 줘>를 보자고 했습니다. 엄마는 “제목 맘에 안 들어. 그거 막장 드라마 아니니? <사랑과 전쟁> 그런 거?” 합니다. 그리고 1화를 보기 시작해서 4화까지 내리 보았습니다. 기력 보충하자고 녹두삼계탕 먹으러 가자고 했었어요. 배가 너무 고파 더는 못 보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갑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서 엄마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엄마, 엄마는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어?” 그러고 생각해 보니, 어쩌면 지금 난 사실 다시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싶어 집니다. 주저리주저리 그렇지 않은가 하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구두 주걱으로 신발을 고쳐 신던 엄마가 상기된 목소리로 답을 합니다. “그럼, 하루하루가 다시 사는 거지! 엄마 환갑 때 아빠가 인생을 덤으로 다시 준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엄마랑 녹두삼계탕을 먹으러 갈 땐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습니다. 엄마가 길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텅 빈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길 그리고 세상을 떠나신 엄마의 두 어머니도 이젠 편히 쉬시길 바라며 엄마가 보글보글 뚝배기에 담겨 나온 닭고기 살을 열심히 발라 녹두랑 진한 국물과 함께 떠서 드시는 모습을 천천히 바라봅니다. 저도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갈 크게 떠서 후후 불어 먹었습니다.

https://youtu.be/Nv2GgV34qIg?si=F0way01YEZFNuHml

Bill Evans, Peace piece , 녹두 삼계탕 처럼 마음을 다독여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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