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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 May 01. 2024

2023년 12월 25일, 뉴욕으로 날아가다

방구석에서 떠나는 뉴욕 : 아줌마 삶을 견디기 위한 여행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면, 우리가 어디에 갔는지 보지 말고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살펴보라.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 경험이 의미를 획득하고 내 자아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일어난다. 집에 가만히 앉아, 내가 본 것들을 오래 지속되는 통찰력에 차곡차곡 담을 때 비로소 그 경험은 내 것이 된다.” - 『여행하지 않을 자유』, 피코 아이어 지음, 에이디스 에이나르스도티르 사진, 이경아 옮김, 문학동네, 2017, 33쪽,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 인용.  

3개월 할부로 끊은 비행기표 값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그저 좀 썼으리라 했는데, 아니다. 혼자 여행이 아니었다. 괜찮아, 죽지 않는다. 좀 많이 절약해야 하긴 하지만. 며칠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눈만 겨우 뜨고 집을 나섰다. 밥을 먹거나 차를 타거나 걷는 길, 하늘, 나무 위로 뉴욕 풍경이 겹쳐 떠올랐다. 시차 적응하려면 떠나 있던 날짜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갑작스럽게 마주친 현실에 나는 번쩍 정신이 들어버렸다. 겹쳐 떠오르던 풍경은 꿈을 꾼 듯 흐려지고 일상에 묻혀 사라진다. 친구들을 만나고 할 일을 찾고 다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그러다가 문득 생각한다. 내가 어딜 갔더라? 왜 갔던 거지? 갔다 와서 난 좀 달라졌을까? 

뉴욕에서는 잘 먹고 잘 자고 많이 걸어서인지 살이 좀 빠졌었는데, 돌아와 운전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보니 청바지 단추 잠그는 게 또 힘들어져서 좀 움직여 보려고 오늘은 걷는다. 허드슨강에서 불어오는 황소바람, 옷깃 단단히 여미고 목도리 둘러도 모자라 결국 첼시마켓 안으로 피해 들어가던 겨울이 지나고, 사람 인(人)자 든 그 도장만큼이나 작고 하얀 꽃잎 펄펄 나부끼며 봄이 떠나가고 있다. 푸른 봄밤, 은은한 향기, 가로등 아래, 부쩍 자란 새싹들이 연두 빛깔로 투명하다. 이런 건 한 장 찍어 둬야겠다. 찰칵.     

 

2023년 12월 25뉴욕으로 날아가다     


눈을 감으면 딸깍 기억이 켜지는 소리. 불이 꺼지고 여기저기서 콜록거린다. 2015년 4월에 이어 두 번째 뉴욕 여행이다. 해외여행을 할 때면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일단 비행기 표부터 비싸니 내 형편에 ‘또’라는 게 가능할까. 상태도 늘 그리 좋지 못했다. 우물에 풍덩 떨어져 갇힌 것처럼 맘 둘 데 없었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아이패드 미니를 열고 글을 쓰려고 했었다. 몇 문장 써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창피했다. 문학소녀라도 되냐며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이도 저도 못 하고 지레 눈치를 봤다. 지금은 뭐가 다르냐고? 다르지. 일단 되든 안 되든 계속 쓰니까. 느려 터진 옛 버전 아이패드 가지고도 말이야. 이게 그렇게 하고 싶어서 소리 안 나는 키보드도 장만했잖아. 무엇보다 달라진 건, 내가 떠올린 사소한 생각들이 글이 되고 그 글을 내보일 곳이 생겼다는 거야. 이런 문턱을 넘기가 그렇게 오래 걸렸네. 이번엔 책을 스캔하지 않고 들고 왔어. 기내에도 두 권 들고 들어왔는데, 빡빡하게 붙어 앉아 자는 사람들 틈에서 불을 켜고 책을 읽는 건 무릴 것 같다. 그래서 더 글을 써보려 하고 있어. 한 다섯 시간쯤 지나면 그때부턴 잠을 자볼까. 인천 공항에서 아침에 출발했는데 뉴욕 JFK공항에 도착하면 다시 아침이다.  

하늘에 오르자 밥이 나왔다. 한국 시간으로 점심이다. 이륙한 지 1시간 정도 지난 셈이다. 원래 출발시간은 9시 50분이어서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씻고 어머니와 미역국 식사하고(예수님과 더불어 시어머님 생신이었다) 6시 20분쯤 출발해 공항에 7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늘 날 먼저 배려하는 맘이 앞서는 남편과 아들, 그들 뜻과는 달리 나는 맘이 수선스러웠다.   

식사가 끝나간다. 고개를 들어보니 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어깨가 시리다. 머플러를 둘렀다. 서 있는 어떤 사람이 이를 닦고 있다. 벌써 헝클어진 머리, 이를 닦느라 그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걸 흘끗 본다. 닭고기 볶음밥이었다. 데리야키 소스를 얹은 닭다리와 볶음밥이 한 그릇에 담겨 있고 버터와 함께 모닝빵이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조그만 그릇에 샐러드가 나와서 반갑게 손에 들고 먹었다. 닭고기를 나이프로 잘게 잘라 소스를 적셔 밥 쪽으로 살살 밀어 섞어서 한 숟가락씩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다. 어제로 도서관 일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어제 점심과 오늘은 어쩌면 이렇게 다른지. 핸드폰 옆에 두고 굳이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밥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 먹을 수 있도록 승무원들이 도와준다. 다른 사람들 먹는 모양 보며 보조를 맞출 필요도 없다. 도서관 탕비실 통창으로 올려보던 저 멀리 푸른 하늘, 그 푸른 하늘을 날아가던 비행기. 그런데 지금, 어쩌면, 그 비행기 속이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그런 바람에 9시 50분 떠났어야 할 비행기가 11시 30분이 다 되어 이륙했다. 24일 새벽부터 내리고 있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활주로를 청소하고 언 기체를 녹여야 출발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잘 기다리는 편이다. 멍 때리기도 잘하는데 맥이 풀리며 눈이 감기기 시작이다. 티켓 예약을 해준 비오 형제님 배려는 언제나 놀랍다. 부탁드린 복도 자리를 잘 챙겨준 것도 그렇지만 옆 두 자리가 한꺼번에 비었다. 이렇게 빡빡하게 들어찬 이코노미석에서 들판을 차지한 느낌이랄까. 언제나 빠른 사람은 있는 법. 한 아줌마가 반대 끝자리로 순식간에 옮겨온다. 모두가 닭 모이 먹듯 밥을 먹는 시간, 화장실은 쉬는 시간. 안내판이 내내 파랗다.      

음료로 받은 트레비 탄산수 한 모금. 승무원들이 저렇게 열심히 서빙하고 있는 와인을 한잔할까. 모닝빵은 남기기로 한다. 나도 한국사람이다. 밥을 먹었는데 빵이 먹히진 않는다. 나온 버터는 반을 덜어 밥에 넣어본다. 어느 정도 식었지만 버터가 부드러워질 정도는 된다. 데리야키 소스 버터 밥을 노린다. 생각보다는 그래도 맛이 있다고 느낀다. 앞자리 앉아 있는 아가씨는 잠이 많이 고픈가 보다. 의자를 뒤로 한껏 젖혀 누웠다. 그대로 놔두다간 내 미니 태블릿이 부서질 것 같아 부랴부랴 허리를 곧추세우고, 정말 미안한데요, 큰일 날 뻔했다고, 의자를 좀 세워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해 본다. 한국 사람처럼 생겼는데 말이 안 통해 승무원 도움을 받았다. 두 시간 조금 넘었을 뿐인데 엉덩이가 조금씩 아프다. 고통을 단 것으로 잊어보려고 후식으로 나온 치즈케이크를 먹었다. 반쯤 먹어갈 때 “커피 오아 티, 커피 오아 티…” 소리가 들린다. 나는 홍차를 반만 따라 달라해서 마셨다. 레몬도 있는데 지나가길래, 주실 수 있으면 레몬 좀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또 불만이었을 것 같다. 안 준다 그래도 달라고 해야 할 판에 주실 수 있냐니. 이러니 저러니 난 레몬을 받았고, 그냥 홍차의 맛과 레몬을 넣은 홍차의 맛을 즐겼고, 아줌마가 뭐 저래 소릴 들을까 깔끔하게 정리해 식사를 마쳤다. 

나는 비행기만 타면 도지는 ‘죄송합니다’ 병을 앓았다. 그래도 많이 나진 편이다. 『G는 파랑』이란 글과 『다녀왔습니다 뉴욕독립서점』을 읽고 영화 <파벨만스>*를 보고 잠도 자고 애를 써도 어깨, 목, 허리, 엉덩이, 다리, 몸 전체가 점점 굳는다. 난 덩치가 큰 편이라 옆자리가 비어 있어도 기대거나 누워 자지 못한다. 건너편 끝에 앉은 체구 작은 아줌마가 긴 시간 앉아 있는 고문을 못 이기고 다리를 뻗는다. 아줌마의 발가락이 내 허벅지에 느껴졌다.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그러라고 하지 않았나. 늘 자기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나다. 착한 척은…. 뭐, 긴 여행 웃으며 갈 수 있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눈 때문에 이륙은 심란했지만 운항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쿵’ 소리 나며 비행기 바퀴가 땅을 쳤구나, 하는 순간 ‘감사합니다’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미국 시간 9시 40분 도착 예정이었지만 11시 30분 정도가 돼서 겨우 뉴욕에 닿았다. 그래 아무리 지루해도,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때는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행여 일행을 놓칠까 부랴부랴 쫓아간 세관 앞에 단체로 왔는지 젊은 친구들이 많이 섰다. 어떤 중년 아줌마는 영어를 못하는지 통역사를 찾는다. 영어를 못하는데 혼자 왔다. 용감하다. 아니면, 무슨 급한 일 있는가. 사연이 궁금하지만 달리 얘기할 사람도 없어서 생각만 바쁘다. 안경을 벗고 사진을 찍고 손가락 10개 지문을 찍었다. 방문 목적을 묻고 동생의 집주소를 묻고 달러는 얼마나 가져왔는지 술 담배 약을 하느냐는 질문들. 못 알아들을까 걱정했지만 알아들었고 “괜찮아요”라고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세관을 만나 입국심사는 무사히 마쳤는데 짐이 너무너무 늦게 나와서 엄마와 동생이 오래 기다렸다. 쉐보레 밴을 가지고 나온 우버 택시 운전자. 동생은 우버 앱을 깔아야 한다고 한다. 내리면서 팁으로 5달러 지폐 한 장을 줬다.

너무 졸려서 뭐가 어찌 된 건지 얼떨떨하기만 하니, JFK공항에서 동생 아파트 있는 Astoria까지 풍경이 끙끙 앓듯 흘렀다. 도로 표지판도 온통 영어고 공항에서 내려 분명 미국이란 나라를 달리고 있는 건 맞는데, 내가 정말 뉴욕에 온 게 맞는가, 한국 어디 파주쯤 서울 변두리 경기도 어딘가 싶다. 쓰레기는 왜 그렇게 많은지. 우버를 같이 타고 나란히 앉은 동생은 연신 코로나 때문에 아시아 포비아인지 사람들이 미쳤다고도 하고, 하여튼 너무 이른 시간이나 해지고 나서는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한다. 듣다 보니 좀 무서워진다. 문득 중학교 때부터 뉴욕에서 공부했다던 한 친구가 떠올랐다. 결혼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공부할 준비를 하고 있던 그는 할렘에서 칼을 맞더라도 뉴욕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었다. 어떻다 해도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 어딘가에 내 것이 있을 거다, 내 눈에 좋은 것, 아름다운 것들이.      

미국에서 첫 음식, 맛있는 거 먹자고 동생은 식당을 열심히 검색한다. 뉴욕도 코로나 덕에 배달이 잘 되니 배달해서라도 뉴욕 음식을 먹자고 흥분한다. 그럴 리가. 크리스마스 날이다. 뉴욕은 지하철 택시 모두 24시간이란다. 그럼 뭐 하나, 다니기가 무섭다며. 결국 엄마가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놓은 육개장과 오이무침, 무생채, 역시 엄마가 짬짬이 길렀다는 콩나물 무침과 찬밥으로 식사한다. 뉴욕의 산해진미가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제일 맛있는 식사였던 건 아닌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3층 아파트를 커다란 짐 들고 올라와 헉헉, 번호 아닌 열쇠를 돌려 열고 들어왔어도 그때까지 뉴욕에 온 줄을 실감하지 못했다. 간혹 들리는 구급차와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크고 낯설어 다르구나, 느낄 뿐이었다. 나는 버티다 버티다 깜빡 잠에 빠지고, 그 사이 동생은 돼지등갈비찜과 샐러드를 해준다. 눈도 못 뜬 채 부드럽고 적당히 매콤한 고기를 잘 먹었다. 엄마는 그새 쇼핑을 하셨는지 바지 산 것을 입어본다. 엄마가 청바지 입은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검은색 바지 하나를 꺼내 보이며 큰 거 산 것 같다면서 입어보라고 건넨다. 못 와 본 9년 사이 TV도 커다란 게 생겨서 늦은 시간 졸며 뉴욕 라이브러리에 대한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다. 이젠 도서관에서 더 일할 일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꼭 이런 식으로 헤어질 결심을 한다.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 엄마랑 그 유명한 뉴욕 베이글을 사러 나가보고 싶다. 


* <파벨만스> :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스티븐 스필버그 각본 감독의 영화였다. 어린 새미가 난생처음 극장에 가보고 영화와 사랑에 빠져 보낸 시절이 중심 이야기이다. 비행기에서 졸다가 잠깐 깨며 본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어릴 때 재밌게 보던 서부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존 포드가 새미에게 예술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느냐 물으며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얘기해 보라 한다. 존 포드는 시가를 물고 불을 붙이며 강조한다. ‘지평선이 아래나 위에 있으면 흥미롭지만 가운데 있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게 예술에 대한 그의 지론이었다. 그를 만나고 길로 나와 신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새미의 뒷모습을 카메라는 가운데 지평선을 두고 찍다가 존포드 말대로 지평선을 바닥으로 살자쿵 떨구며 영화를 끝낸다. 가운데에 지평선이든 수평선이든 두는 풍경을 좋아하는 나는 이를 스필버그 감독의 위트로 받아들인다. 서울로 돌아와 시차 때문에 깨던 새벽, 이 영화를 본 기억 때문인지 넷플릭스에서 ‘봉준호 감독은 어디에서 어떻게 영화를 시작했을까’란 말에 끌렸고, <노란 문: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를 보았다. 


Pier 57에서 바라보는 허드슨 강 위의 일몰. 뉴욕의 겨울은 해가 대단히 짧다. 오후 5시도 안 된 시간이다. 저멀리 보이는 곳은 뉴저지.


피어 57은 뉴욕 맨해튼 서쪽 허드슨 강에 위치한 긴 부두이다. 1907년 건설된 부두. 화재 후 1950년 뉴욕시에서 수행한 부두 건설 작업 중 가장 큰 규모였던 피어 57은 1954년 완공되어 개장했다. 1955년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뉴욕 건축 연맹 공학 부문 금메달을 수상. 2004년에 비워진 역사적 장소 피어57은 2009년 재개발 시작, 2020년 시티와이너리 오픈, 2022년 4월 옥상공원 오픈. 구글 뉴욕 사무실 및 캠퍼스가 있다. 2023년 4월 1일 일반에 재오픈. 주변에 예전에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말뚝이 강물 위로 비죽비죽 튀어나와 있다. (위키피디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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