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서 떠나는 뉴욕 : 아줌마 삶을 견디기 위한 여행
매일 비가 와서 그런지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는다. 남편은 요즘 많이 바쁜가 보다. 언제 일어나 갔는지 모르겠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납작하게 반으로 썰린 베이글 하나가 들어있다. 언제 사다 놨나, 옆엔 좋아하는 크림치즈. 반쪽 베이글에 몽글한 크림치즈를 발라 입에 물고 나왔다. 방구석 책상에 앉아 조용히 다녀온 뉴욕 생각하면 좋겠다, 했는데. 웬걸, 진득이 앉아 있을 시간이 도대체 없다.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 18층부터 깜빡 깜빡이는 숫자에 넋을 놓고 멍하니 섰을 때, 그때야 홀연히 뉴욕에서 먹던 베이글이 떠 오른다. 크기도 참 컸었는데. 베어 먹기 힘들어 나이프가 필요할 정도로 겉이 더 쫄깃했지. 큰 빵 두께만큼 가득 채운 크림치즈. 비싸기도 했다. 모, 미국이니까. 지금 먹고 있는 베이글은 얼말까. 크기가 작은 만큼 값이 더 싼 걸까.
뉴욕에서 베이글을 먹다가 엄마는, 백내장 수술한 눈과 하지 않은 눈이 보이는 게 다르다고 하더니, “얼마나 고맙던지….” 백내장 수술했을 때 안과 앞에서 안 서방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안과 앞에서 안 서방이’란 말이 속없이 웃겼다.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몰랐을 수가 없는데.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던가. 그는 그런 사람이다. 결혼 27년 차. 아이를 낳고 도무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어느 날 아침, 그는 날 스타벅스라는 커피숍엘 데리고 나가줬다. 가운데가 뚫린 빵을 데워 크림치즈를 발라 한 입 베어 물고 커피 한 모금. 갑자기 찾아온 그 여유로운 시간이, 기억도 아니고 그저 습관처럼, 몸속 어딘가 뭉근히 녹아 있나 보다. 그는 지금도 일요일이면 베이글을 사다가 샐러드, 커피와 함께 아침을 차려주곤 한다. 꼭 구워서 크림치즈며 잼이며 바르는데, 오븐 앞에 개구리 다리를 하고 붙어 서서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하고 시간 딱 맞춰 꺼내서 접시에 담아 내준다.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베이글을 먹던 그 아침, 뉴욕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팔푼이처럼 남편이 보고 싶었다.
아빠도 계시지 않고, 남동생도 남편도 또 아들도 없이 엄마, 여동생, 나 그렇게 여자 셋이 모여 아침에 베이글을 먹는다는 게 왠지 낯설었다. 언젠가 TV에 서울 3대 베이글 집 중 한 곳이라며 뉴욕에서 40년 넘은 가게 해외 분점이라는 곳이 나왔다. 사람들이 가게 앞으로 줄을 서 있었다. 출연자도 모두 여자였고, 주변 테이블을 가득 메운 손님도 모두 여자. 그러고 주위를 둘러보니 뉴욕의 그 베이글 집에는 혼자 앉은 남자들이 많이 있어서, 이래서 뉴욕인가, 이런 게 다른 점인가, 생각했다.
그전에 동생에게 갔을 땐 <슈츠 suits>라는 미국 드라마 시리즈를 보았었더랬다. 동생이 살고 있는 아파트 현관을 열고 나가면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땐 로망(?) 같은 게 있었는데, 커다란 박스 티에 레깅스를 입고 산책을 갔다가 커피와 베이글을 사 들고 돌아와 앉아 아침을 먹는 것이었다. 뉴욕은 내게 집에서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곳. 엄마와 동생 힘을 빌려 아주 조금은 용감해진다. 운동화를 신고 선글라스를 끼고 쫄쫄이바지에 박스티를 입고 나갈 수 있는 곳. 베이글을 사려고 서 있자면 유모차를 밀고 나와 줄 선 엄마들이 많았다. 그때가 더 좋았다, 말해야 할까. 코로나를 겪으며 동생도 나이 50줄을 넘어섰다. 건강이 한 번쯤 삐끗하는 나이. 지난번과 달리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빵보다는 밥을 먹고, 슈퍼에서도 글루텐 프리, 논 지엠오, 오가닉을 골랐다. 나 혼자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려면, 사는 곳 몇 블록 위쯤에 있는 프로젝트 아파트 지역과 어디냐, 퀸즈보로에서 39번가 사이 오른쪽 어드메서 안 좋은 일 자주 일어난다더라고 거듭 조심하라 말한다. 지지배, 그럼 넌 이런 데서 20년을 넘게 산 거니?
“언니, 언니가 사 오던 그 베이글 집 문 닫았어. 다른 데 알아 놨으니까 거기 가서 아침 먹자.”
일어나 돌아가며 씻고 브로드웨이(Broadway)*로 베이글을 먹으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나날이 입씨름이라 전날 엄마도 불편한 맘 표현하며 잠들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말수가 적은 아침이었다. 코로나 해제되고 첫겨울이라 저녁에는 밖에 안 나가려고 했다며 동생은 베이글로 브런치 하고 함께 동네 산책을 하자고 했다. ‘뉴욕 시티 베이글 앤 커피 하우스’. 맛집 소개로 알려진 그 베이글 집은 아니지만 대놓고 여기, 뉴욕 베이글과 커피를 파는 곳이란다. ‘뉴욕에서 가장 많은 이가 찾는 아침 메뉴는 햄&에그 샌드위치가 아니다. 바로 베이글이다.’ ** 라더니. 천장부터 유리 케이스에까지 걸린 메뉴판에는 뭐라고 그리 빼곡히 적어 놓았는지. 동생은 베이글을 고르고, 크림치즈를 고르고 또, 속 재료를 고르고, 이리저리 곡예를 하듯 주문을 해준다. 미국에서 혼자 헤치고 살아온 얘기, 친구와 먹곤 한다는 달디단 머핀도 추가해 먹으며, “언니, 형부랑 싸우고 온 거야?”하는 엉뚱한 질문에 이런저런 엄마 얘기 듣다 보니, 동생과 내가 언제 그렇고 그랬던가, 마음이 편안해진다. 뉴욕의 베이글이며 머핀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맛있는 건 과하다시피 다 들어 있으니까. 먹성 좋은 세 모녀, 배가 불러 끝까지 다 먹지 못했다.
* 뉴욕 퀸즈 아스토리아 31번가에 있는 뉴욕 지하철 역 주변 번화가를 말한다. 우리가 뮤지컬의 성지로 알고 있는 브로드웨이는, ‘미국 뉴욕 맨해튼 남단의 배터리 공원 북동단에서 출발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배열된 거리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북으로 통하는 대로다. 맨해튼 섬 남동쪽에서 북서쪽 끝까지 이어지는 긴 대로이고, 그중 북쪽 끝에는 미국 9번 국도가 포함되어 있지만, 흔히 브로드웨이라 하면 떠올리는 번화한 곳은 타임스 스퀘어와 그 부근 미드타운 지역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위키백과)
**『뉴욕을 먹다, 세계의 중심에서 맛보는 일상의 음식과 특별한 음식』 , 김한송, 따비, 2023. 16쪽.
‘베이글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동유럽의 유대인이 미국과 캐나다로 대거 이주하면서 북아메리카 대륙에 퍼져나갔다 그 중심에 많은 수의 유대인이 거주하는 뉴욕이 있었다. 2022년 기준 뉴욕의 인구는 약 1,968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유대인의 수는 160만 명 정도로 파악된다. 뉴욕은 맨해튼, 브롱크스, 브루클린, 퀸스, 스태튼아일랜드의 다섯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뉴욕 인구에서 작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는 유대인들은 특히 브루클린 지역에 많이 거주한다.’ (22쪽)
이젠 나와서 산책한다. 걷다가 미국 국기,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는 집들을 지난다. 광화문에서 태극기 부대가 들고 있는 국기는 태극기 빼고 다 있네. 이스라엘 국기가 걸려 있는 음식점 앞을 지난다. 동생은 국기가 걸려 있는 덴 웬만하면 피한다고 한다. 여러 나라 사람이 모여들어 살고 있는 곳이 뉴욕이라서 세계 어딘가에 갈등이 발생하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도 크고 작게 일이 생기곤 한다는 설명이다. 전에 왔을 때 갔던 브루클린에 피터 루거 스테이크 하우스(Peter Luger Steak House)도 이번엔 안 가려 한다고. 한 에콰도르 음식점도 지난다. “좀 봐줘라 레스토랑이네, 저기. 맛있었어.” 영어가 아직은 낯선 엄마가 기억하는 방식이다. 그곳 이름은 ‘Barzola’다. “참, 파마씨에 가서 뭐 사야 한다며.” ‘pharmacy(약국)’을 말하는 거다.
브런치 먹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산책을 좀 했을 뿐인데 노을이 진다. 오후 4시 46분 일몰. 뉴욕 겨울 해는 정말 짧다. 눈 대신 비가 내리고, 걷고 걸어 아직 거두지 않은 크리스마스트리와 전등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이렇게 한참 떨어진 건 정말 오랜만이어서, 비가 오고 찬바람이 불어서, 생각이 많다. 따뜻하게 콤부차를 끓여 마시고 유튜브로 한국의 아침뉴스를 엄마랑 함께 본다. 뉴욕은 9일이고 한국은 10일이다. 남편은 출근했겠다.
https://youtu.be/AnZ0oAer6Mc?si=KPhChHkHKDjnlIB2
희망차게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좋다.
To travel hopefully is a better thing than to arrive.
- <<보물섬>>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