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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김 Jul 10. 2023

오늘도 바람처럼 하루가 열리겠지

너도바람꽃이면 나도바람꽃

이따금 마을 삿갓봉에 오르면, 능선 따라 산들바람이 부는 산골짜기에 피어난 바람꽃과 마주칠 때가 있다. 야생 꽃무리 하나하나에 미소를 짓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유유자적한 마음으로 산책에 나서는 것이다. “봄은 숲으로부터 온다”고 했던가?

우리 마을은 바람의 아이들이 꽤 많이 사는 동네중의 하나이다. 이웃집 목사님 부부가 어린이집 같은 걸 운영하고 있는 덕분이다.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던가. 정자나무를 지나 텃밭 가는 길에, 마을에서 노래도 잘하고 꽤나 발랄한 소녀와 노인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신비로운 바람꽃에 관한 이야기를 소녀에게 들려주었다. “옛날 옛날에 산골짜기 바람꽃은 한 명의 신비로운 요정이 지키고 있었단다. 그 요정의 이름은‘너도바람꽃’이었지. 너도바람꽃은 세상 모든 바람의 소리를 알고 있었지. 게다가 바람소리에 맞추어 노래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 한 번은 너도바람꽃이 어린 소년에게 느티나무 그늘에서 쉬어 가라고 말했단다. 소년은 우연히 너도바람꽃이 노래하는 걸 듣게 되었고, 그만 노래에 흠뻑 취해 잠이 들고 말았지. 소년이 잠이든 사이 꿈속으로 빠져들었는데, 꿈속에서 바람꽃은 금새 노래하는 요정으로 깜짝 변신하여 눈앞에 나타났지. 너도바람꽃은 바람을 사랑하는 요정인데,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단다. 너도바람꽃은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행운을 안겨주었지. 너도바람꽃을 만나 소원을 말하면, 그 소원을 꼭 들어줄 거야. 그런데 꼬마야, 네 소원은 뭐지?”노인이 물었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꿈을 심어주고 싶어서 이런 우화같은 얘기를 들려주었으리라.

 오늘따라 왠지 나도 바람의 아이들처럼 너도바람꽃 요정이라도 만나고 싶다. 그녀의 향기에 취해서 느티나무 아래서 춤추며 노래하는 바람골에 사는 풍경소리에 흠뻑 빠지고 싶어진다. 산골짜기 능선따라 봄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처럼, ‘너도바람꽃이면 나도바람꽃’이 되고 싶은 심정에 사로잡힌다. 무지개처럼 눈부시게 피어나는 꽃들 사이에서 서로를 꽃잎으로 봉인하고 향기를 내뿜으면서 너나들이 같이 웃고 같이 울던 요정같은 친구라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너나들이 같은 바람을 마시고, 같은 향기를 맡으며 영원히 흔들림 없는 사랑을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숲길 산책에 나설 때마다 마주치는 숲속의 요정과 함께라면, ‘너도바람꽃이면 나도바람꽃’이 되어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너도바람꽃따라 바람골사는 당신만을 위한 송시를 바친다. 

 “꽃샘바람이 그대를 시샘할지라도 꽃빛자리를 여는 시간이라면, 샛노랑 산수유처럼 톡톡 피어나리다. 내 안에 꽃이 피어난다면 그대가 피운 꽃일테니 샤랄라한 꽃자리를 고이 내어주리다. 내 품에 안은 당신은 너도바람꽃 같아서 나도바람꽃! 그대의 꽃길을 위해서라면 한알의 밀알처럼 죽어서라도 샛노랑 꽃빛으로 고이 피워내리다.”     

 쌍이로구 삿갓봉 바람골에 누가 이처럼 아름다운 감성을 심어놓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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