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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김 Jul 11. 2023

아고똥하니 여여하게 사는 이유

누가 ‘리틀포레스트’ 라 했나?

나는 자연인처럼 여여한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TV를 보아도 ‘세계테마기행’이나, ‘나도 자연인이다’같은 산골체험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그래서 은퇴하기도 전부터 번잡한 도시공간에서 벗어나, 시골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가령 안톤 체호프의 『고향집에서』란 단편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인‘베라’처럼 말이다. 

 주인공인 베라는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가지만, 나중엔 그녀가 원했던 낭만적인 고향의 모습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나머지, 단조로운 시골생활에 크게 실망에 빠지고 만다는 얘기를 담아내고 있다.


⟪초원길을 따라 달리는데, 당신 앞으로 점차 그림들이 펼쳐진다. 모스크바 근교엔 없는, 거대하고 무한한, 한결같아서 매력적인 그림들이다. 베라도 초원의 매력에 빠져서 과거는 잊은 채 이곳이 얼마나 여유로운지 생각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지금껏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런 탁트인 공간과 여유였다. (중략) 베라의 새 인생이 시작됐다...고향 보금자리에서의 새로운 삶을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헤아려 보려 했다. 이 광활한 공간, 초원의 아름다운 평온이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고, 아니 이미 왔다고 말해 주었다. (중략) 카드놀이, 댄스, 식사...허송세월...하지만 뭘 해야 할까? 그런다고 무슨 소용인가? 광활한 공간, 기나긴 겨울, 삶의 단조로움과 지루함이 무력감에 빠지게 하고, 상황은 절망적으로 느껴지며 아무것도 하기 싫다. 다 소용없다...더 나은 것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더 나은 것이란 없으니까!......⟫  (*안톤 체호프, '고향집'중에서 인용)   


 시골낭만이 왠 말인가? 도대체 누가 시골살이를‘리틀 포레스트’라 했나?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아늑한 시골집에서 마냥 힐링하면서, 호젓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면 큰 오산이다. 시골에서 직접 경험을 해보거나 이웃들과 교감하기 전에는, 정작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산골마을은 원래 온갖 벌레는 물론, 개짖는 소리, 닭우는 소리, 경운기소리에 농촌다운 소리들로 넘치는 곳이다. 실제로 살다보면, 소설속의 베라가 꿈꾸었던 로망이나 전원생활 같은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다.

 그래도 내겐 그런 농촌의 소박한 풍경들이 좋다. 산마루 숲속의 녹음 소리, 들꽃무리와 교감하면서 살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순박한 이웃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골 정착기는 어설픈 농투성이의 시작이자, 밀짚모자 쓴 남자로서 새로운 삶터로의 여행이다. 시골집에 이사하면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답답한 회색철문인 대문 철거였다. 그리곤 빨강 벽돌담장도 자연석 돌담으로, 울타리도 쥐똥나무에, 꽝꽝나무와 함께 꽃잔디를 심어 열린마당으로 둔갑시켰다. 대문 기둥에는 ‘이심대지(以心代智: 마음이 지혜를 대신한다는 뜻)’란 문구까지 새겨놓고 시골살이에 순응하자는 뜻을 담아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 그럭저럭 산골생활을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다. 어쨌거나 시골마을에서 마주치는 야생의 풍경만큼이나 미처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말이다. 결코‘리틀 포레스트’같은 낙원만은 아니란 것을... 이런저런 시골살이 속에서도 나만의 소박한 삶의  가치를 느끼면서 말이다. 

아무튼 이런 게 세상사는 이치요, 이유였으면 좋겠다. 나에게 ‘집이란 새김꺼리 얼기설기 서려있는 곳, 나에게 집이란 쓴맛단맛 삶의 마디를 담아내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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