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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Feb 12. 2024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생각

클린스만 축구 대표팀 감독을 경질 내지는, 자진 사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 연휴를 뒤덮고 있다.

나는 이런 목소리를 조금은 원론적인, 다른 시각으로 짚어 보았다.


내가 기사를 통해 듣기를, 아시안 컵 4강 이상 진출했을 시에는 막대한 위약금이 발생해서 해임을 못 한다고 보았는데, 이에 관한 해임 여부는 어디까지나 축구 협회 소관이기 때문에, 위약금이 부담스러워 해임을 못 한다면, 이 또한 협회의 결정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축구협회가 국민 세금으로 설립되어 운영되는 기관이라면 국민들이 해임 요구를 할 자격이 갖춰 지는데, 지금 국민들이 경질하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 의중으로써 목소리를 낼 뿐이지, 이에 대해 축구협회가 의무적으로 따라야 할 법적 근거는 없다.


국민들이 이런 점을 상기해서 적절한 수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좋은데, 각계 유명인사, 연예인이라던 지, 심지어 영향력있는 정치인들까지 가세해서 축구협회와 감독을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국민들 목소리에 편승해서 본인들도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일 수록 사실 관계를 파악해서 신중하게 의견 개진을 해야 한다.

경질 시에는 법적으로 위약금이 발생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란 것을 잘 알 것이고, 그에 관해 비판하는 만큼 본인들도 다만 얼마라도 위약금 발생에 보탤 생각은 있으신 지.


클린스만 감독이 지도력이나 태도로 비난을 많이 받지만, 그럼에도 항상 당당하고 여유있는 근거는 본인 특유의 성격도 있을 테지만, 이런 근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철저히 계약에 근거한,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감독직을 수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우승은 못 했지만, 그래도 4강은 갔잖아? 해임하고 싶으면 해. 그런데 위약금 줘. 계약서에 엄연히 명시된 약속이잖아?"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정서와는 전혀 다른 마인드의 사람이다.

서양식 자본주의, 철저히 비즈니스와 계약에 근거해서 그 틀 안에서만 정확하게 움직이는 사람.


"결과를 놓고 얘기해라. 전술이 없네, 어쩌네, 해도, 어쨌든 여태까지 쭉 이겼으면 된 거 아니냐.", "연봉 이만큼 줄 테니까 감독해라, 그래서 감독했지, 그래서 4강 올라 갔지, 우승까지 가려했지만 지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우승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지, 우승한다고 계약 상으로 보장은 안 했지."


뭐, 내가 축구협회와 클린스만 감독 계약서를 봐서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철저히 계약 상의 원칙에 근거해서 따지고 들어 가면, 클린스만 감독은 여태까지 계약서대로 충실히 이행을 하고 있다.

특정 성적까지 달성을 못 하면 해임한다는 단서가 없었으면, 막대한 위약금을 주던 지, 아니면 계약 기간까지 임기를 보장해 줘야 맞다.

클린스만 감독은 잘못한 게 없다는 뜻이다, 원론적으로만 따지면.


우리 국민들이 축구에 대한 기대치가 많다 보니까, 이런저런 견해도 많고, 과도하게 몰입하다 보니까 감독의 영역인 전술까지도 분석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다 글쎄, 유교적 개념이랄까, 감독이 모든 책임과 권한이 있고, 졌으면 죄인이 돼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하고, 스스로 물러 나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런 국민적 정서와 클린스만 감독의 비즈니스적 마인드와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

축구협회에서도 국민 정서보다는 그래도 성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감독 마인드나 태도보다는 실력이나 인지도를 고려해서 감독을 선임했을 테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아무리 감독 태도가 어떠니, 재택 근무니, 비난을 해도, 결국 이기기만 하면 국민적 비난은 다 묻히게 될 것이니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여기서부터이다.

감독을 해임하냐, 안 하냐에 매몰되지 말고, 이 시대에 스포츠 정신이란 것이 많이 변질되었다는 것.

축구 뿐이 아니고, 어떤 스포츠 경기를 하더라도 요새는 자국만 열심히 응원하고, 지면 실망하거나 나라 망신이라며 역적 취급을 해 버린다.


스포츠란 게 본래 체력과 정신력을 증진시키고, 공정한 시합을 하면서 기량이 우수한 자를 선발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상도 주고, 패자는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면서 상대방의 우수한 기량을 인정하면서 모두의 '화합'을 꾀하는 것이 본질인데, 요새는 이상하게 국제적으로 총포 없는 대리 전쟁터로 전락되어 버렸다.

상대방이 우리보다 잘 하면 우리가 지는 게 당연하고, 그럼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그 상대방의 우수성과 노력을 인정하고 축하해 줄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인데, 졌다고 감독과 선수를 여론으로 몽둥이질하는 게 과연 스포츠 '경기'를 하는 것인 지, 공을 두고 하는 '전쟁'인 지.

국민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선수와 감독을 대하니까, 자꾸 잘 싸워 이기는 '축구 전쟁병기'로만 변질되어 간다.

공평한 페어 플레이에 입각해서, 결과를 떠나 서로를 인정하고, 경기를 통해 서로 친밀감을 생성해서 하나되어 가는 동질감이 만들어 지는 지구촌 축제의 장이 형성돼야 하는데, 서로 죽자사자 식이다.

이 건 스포츠도 아니고, 경기도 아니다.

져도 우리 선수들이고, 최선을 다 해 뛰어 준 선수들이고 감독인데, 위로와 응원은 못 할 망정, 자꾸 승패에만 연연해서 선수들과 감독을 이런 식으로 비난을 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지금 '스포츠 전쟁광'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런 지.


우리도 사상 최초 2002 한일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는 국민 모두가 환호하고 하나된 기억이 있다.

축구 후진국인 우리 나라가 유럽의 강호들을 연달아 대파하고 4강까지 올라, 우승 후보였던 독일과도 거의 대등하게 분전했다.

전 세계가 놀라고,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우리 나라 응원단과 국민들, 대표 팀과 감독에게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직 옛날 브라운관 TV로 당시 경기를 봤던 나도 대단했다.


아시안 컵의 위상은 월드컵까지는 아니더라도, 요르단이 결국 우리를 꺾고 결승까지 갔는데, 그들도 우리가 느꼈던 당시의 엄청난 열기를 만끽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만 항상 모든 경기, 모든 약한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도 이변 아닌 이변으로 2002 월드컵 4강 진출,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쾌거를 달성했다.

우리만 모든 이변의 혜택을 독점해야 하고, 요르단 경기처럼 상대방에게 이변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심보인가?


클린스만 감독이 이 점에 대해선 백번 만번 참 잘 한 것이다.

최선을 다 해 경기를 하되, 졌다면 깨끗이 결과를 수용하고, 상대 팀을 인정하고 축하해 줘야 맞는 것이다.

헌데, 우리 국민들은 무슨 웃는 모습이 아니꼬운 지, 웃어서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참 이상한 국민들이다.

클린스만 감독한테 스포츠 정신부터 배워야 한다.


내가 어딘 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 어릴 때 남미의 어떤 축구 수비수로 인해 실점을 해서 결국 나중에 그 수비수는 누군가에게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90년대인데, 아마 검색하면 나올 것이다.

그깟 공놀이 하나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죽다니, 이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스포츠를 승패의 기준으로만 입각해서 '전쟁'으로 변질시키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도 지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본질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상대방이 잘 하면 질 수도 있고, 우리가 이변으로 강호를 꺾은 적이 있는 것처럼, 요르단도 우리를 이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대표 팀과 감독을 죄인 취급을 하고, 경질하네, 마네를 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축구 전쟁광'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우리 대표 팀과 감독을 더욱 응원하고, 격려해야 하고, 열심히 분전해서 결승까지 오른 요르단을 축하해 줘야 한다.


자꾸 이런 추세가 가중되다 보면, 전 세계가 더욱 비싼 감독을 선임해야 하고, 경기 잘 하는 선수를 육성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도 더 많이 해야 하고, 그렇다 보면 국민적 기대치는 더 높아 지고, 다른 나라들도 여기에 질 세라 감독 몸값을 올리고, 선수 육성 인프라에 더욱 투자를 하게 되고.

전 세계인이 축구에 매몰되어 전쟁을 하는 3차 세계대전의 모의전이 축구로 말미암아 가속된다.

올림픽도 마찬가지고, 축구도 마찬가지고, 경기를 통해 모두의 화합과 축제의 장을 만들고자하는 취지인 것이지, 경기 승패와 상금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자 한다면, 이런 경기들은 모두 폐지되어 마땅하다.

그럼 국가 간 화합은 덜 되어도, 적어도 싸우는 일은 없을 터.

월드컵 주최 단체인 피파가 국제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부를 축적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전 세계가 '축구 경기'가 아닌, '축구 싸움'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다.


스포츠는 스포츠로써 즐기면, 승패를 연연할 일이 없다.

경기를 하는 그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

좋은 상대가 되어 준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고맙고, 승패에 목숨걸 이유도, 이겨서 기뻐하거나, 져서 자존심 상할 일도 없어야 한다.

스포츠는 심신을 단련하고, 스포츠를 통해 활력과 즐거움을 얻고, 페어 플레이 정신을 배우는 유익한 축제의 장이 되어야지, 이런 식으로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들이 이 것부터 상기해야 한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 약간의 비판을 하자면, 글쎄, 나는 이 번 아시안 컵을 챙겨 보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감독의 전술적인 부분이 부재하다고 한다.

감독 본인이라고 해서 아마추어도 아니고, 왜 아이디어가 없겠냐마는, 우리 팀이 이겼다 하더라도 과정 면에서 불안 요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수한 자원들을 보유하고도 좋은 결과와 더 좋은 내용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지향해야 하는 것이 맞지, 현재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무전술이 전술이 될 수도 있다.

헌데 이는, 감독과 선수들이 아주 많은 시간을 같이 훈련하면서 호흡을 맞추고, 각자가 매 상황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를 안다는 수준에 이르면 가능하리라 본다.

말 그대로 감독이 구태어 터치하지 않아도, 선수들에게 자발적으로 믿고 맡길 수준까지 끌어 올린다면.

그런 게 아니라면, 치밀하게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다변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확장력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이 감독인데, 이런 부분까지 선수들에게 위임하는 것은 너무 방임적인 것은 아닌 지, 우려가 든다.

내가 여태까지 아득바득 이겨야 하는 것이 스포츠는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그렇다고 또 물렁하게 하는 것도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쪼록, 우리 국민들이 스포츠 그 자체를 즐기고, 결과에 초연하는 국민들로 성숙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렇게 되면, 클린스만 감독의 대한 처분도 협회 소관에 맡기면 될 일이고, 우리 국민들은 그 동안 경기를 즐겼으면, 결과는 승복하고, 상대방은 축하하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하면 된다.

열심히 분전해 준 선수들과 감독을 격려하고, 결승까지 올라 멋지게 싸운 요르단 축구 대표 팀, 개최국이자 우승국인 카타르 대표 팀의 승리를 축하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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