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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속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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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May 13. 2024

석양 앞에

모처럼의, 제법 모처럼의 출타였다.

나는 우체국 일이 아니면, 어지간해서 읍내에 나갈 일이 없다.

출타하고 싶으면, 그냥 적당한 날 잡아서 쓱 나갔다 돌아오면 되련만, 밀린 숙제를 뒤로 하고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 달 동안 출타를 하지 않은 적이 많다.

마침 우체국 나갈 일이 생긴 것에 기뻐하며 나가게 된 것이다.

바보같이.


산지인 내 마을과 달리, 읍내는 평지라서 기온차가 있다.

읍내에 당도하니, 온화한 봄날이라 하기엔 조금 덥게 느껴졌다.

시원하고 달달한 콜라, 기름진 감자튀김과 햄버거로 점심을 결정했다.

시골에서는 롯데리아만이 유일한 패스트 푸드점이다.

그나마 이마저도 꾸준히 영업을 한다는 게 다행이다.

공복에 기름진 음식이라 뒷탈은 있었지만.


읍내에 용건을 보고 나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생활하다 밀린 일들을 이 시간에 해결해 나간다.

그러다 다시 회차할 막차 시간이 당도하면, 종점에 미리 가야 한다.

시골에서 버스 막차를 놓친다면...

매우 좋지 않다.


읍내에는 커다란 개천이 흐른다.

이 정도 크기면 강이라 해도 무방할 텐데, 개천이다.

저녁 6 시 반을 넘긴 시각이었고, 지는 해는 개천을 건너는 나를 찬란하게 비춰줬다.

점점 여름을 재촉하는 것 마냥, 늦봄의 석양은 쨍하고 뜨끈했다.


예전같았으면 저 해를 보면서 어떤 美적인 느낌, 자연에 대한 동경심 따위의 소회가 들었을 진데, 오늘은 달랐다.

한결같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 어릴 적 교과서에 따르면 태양계가 생성되었다는 아득한 시점부터 해는 항상 일정한 시간에 뜨고, 일정한 시간에 밤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당연하고 당연한 현상이지만, 거기엔 해가 존재해야 할 어떤 목적과 역할이 타당하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최종 귀결은 이 땅의 가장 존귀한 존재인 인간을 위한 것에 도달한다.

해가 있어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것도, 작물들을 자라나게 해서 인간이 살아가며 필요한 먹거리들을 키우는 것도, 모든 귀결점은 인간으로 향해있다.


해는 이토록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건만, 나는 이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를 했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해를 바로 볼 수가 없다.

눈이 부셔서가 아니라, 무전취식의 손님이 식당주인에게 부끄러운 것처럼.


해 뿐이랴.

해가 뜨고 지는 것은 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 지구와 여러 행성들이 운행하면서 다양하고 유기적인 기운을 생성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라는 땅에서 인간들이 생명을 영위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배짱이처럼 살아간들, 해는 아랑곳 않고 어김없이 뜨고 지며,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은 저마다의 역할에 따라 묵묵히 운행을 하고있다.

이 땅의 인간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는 자들이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자들도 공존할 것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오늘의 해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 했다.

자신의 맡은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세상의 밀알이 되는 분들 때문에 이 세상은 그래도 유지되고 발전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치열한 세상이라는 회오리 속에서 폭풍의 눈처럼 한가로운 시골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있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다 할 수 있겠는가.

백지장 한 장 들어 드리지 못 해서 나로 인해 이름모를 누군가는 내 짐을 영문도 모른 채 대신 짊어지고 가고 있으니, 어찌 죄송하다 하지 않겠는가.

이런 판국에 사사로운 예술이 어떻니, 철학이 어떻니, 理想과 진리가  어떻니를 읊고 자빠지는 것이 배은망덕한 신선놀음에 지나지 않나니.


소인이 다만 한 가지 다짐컨데, 내 언젠가 당신을 만나거들랑, 작디 작은 꽃 한송이 바치리니, 부디 미약한 향기나마 맡아 주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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