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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속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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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Nov 07. 2023

언어로 규정되지 않은 감정의 꿈

언뜻 보기에는 비싼 고급 아파트처럼 보인다.

날은 쨍하지 않으면서도 청명한 날이었다.

그 아파트 최 윗 층에 올라 갔다.

극장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또 그런 극장에 틀어 주는 상업 영화는 아니었지만, 어떤 영상 하나를 감상하게 되었다.


아주아주 묘한 영상이었는데, 색깔있는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기도, 그 외에도 몇 가지 장면들이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신비하고 묘한 느낌의 여행을 시켜 준 것만 같았다.

영상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다가도, 뭐 이토록 아름다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고, 묘하지 않게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이런 영상이 다 있을까, 내가 여태 본 기성 영화(극장도, 표를 끊고 보는 영화도 아니었지만) 중에 이토록 나에게 감흥을 주는 영상이었다면서 마침내 감동의 눈물이 폭발되었다.

여태까지 느껴 보지 못 한 매우 색다른 감정이었으며, 참으로 묘하면서도 묘한 느낌이었다.

왜 자꾸 "묘하다."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느냐면, 영상 자체를 보면, 시각적으로 화려하거나, 멋지다는 이런 느낌은 없는데도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느껴 보지 못 한 또다른 종류의 '감동', 그 것도 '감동'이란 단어에 가장 근접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숙연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다고 또 슬프지는 않은, 홀연한 느낌이지만 나는 그 자리에 있고.


한 800 리터 정도 되는 진한 재색의 냉장고가 하나 있다.

많이 진해서 거의 검정에 가까운.

냉장고는 삼성 제품이었는데, 나는 얼마 전에 삼성 냉장고는 소음이 염려되어 사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냉장고 양문을 여는 찰나, 잠시 냉장고 돌아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 졌다.

내가 생각했던 만큼 시끄럽지는 않은가 보구나.


열어 보니 안에 흰 불이 켜 졌는데, 그냥 빈 냉장고였는 지, 아무튼 휑하니 별 건 없어 보였다.

여기서 가장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 왔는데, 이 냉장고 겉에서 양문을 한 번 열고, 여기서 또 한 겹을 여는 식의 냉장고란 것이다.

옆에서 보면, 한 번 양문을 열고, 거기서 또 양문을 열 수 있는 식의 폴드 형이랄까.


이제 나는 다시 가야 한다.

실내는 마치 강남의 펜트 하우스처럼 꾸며 진 고급 호텔 같아 보였다.

엘리베이터에 들어 가서 버튼을 누르는 찰나, 빨간 불이 켜졌는데, 그 것은 밖에서 잡아 두기 위해 눌린 것이다.

"뭘까?"

누가 다시 탄 것은 아닌데, 마침 내가 옷을 두고 내린 사실이 번뜩 생각 났다.

내 상의는 탈의된 채였고, 전혀 그런 기억은 없었는데, 아까 극장 안에서 옷을 두고 내렸으므로, 다시 찾아 와야 한다.

바지는 입고 있었고, 상의는 아예 탈의되어, 어떤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로 몸을 겨우 가리고 있었다.


마침, 그 호텔의 직원이 나타 났는데, 언뜻 보면 서양의 하녀들이나 입는 복장 같기도 했고, 뭐 그런 복식이었다.

나이대는 대략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아주 미모가 있으면서도 단정하게 잘 꾸민 테였다.

처음 말을 붙일 때, 하필 오래 걸은 것처럼 다리에 힘이 들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있던 상영관에 상의 옷이 한 벌 있을 테니, 좀 가져다 주지 않겠느냐고 부탁을 했다.

뭐, 친절해 보이는 직원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나한테 어떤 답변은 생략된 채, 어쨌든 그 건 안 되는 것 같고, 내가 직접 가서 가져 와야 할 판이었다.


내가 다리에 힘은 없지만, 어떻게든 일어 나서 차츰차츰 복도를 거쳐 옷을 가지러 가는데, 아까 설명한 것처럼 내 상의는 탈의되어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로 겨우 가린 모습이었다.

그렇게 걷는 와중에, 방금 그 여직원이 한 손으로 내 등을 대 주었고, 다른 한 손으로 내 가슴팍을 대면서 마치, 나를 보호하고 도와 주 듯이 같이 따라 가 주었다.

이 때 나는 고마움과 비슷한, 방금 그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그 묘하고 신비로운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고맙다고 느낄 장면이긴 한데, 고마움과 또 다른, 아무튼 또 묘하고 감동스런 그런 느낌이었다.

포근하면서도 사랑받는 느낌이랄까.


원래 옷이 놓여 진 곳에 도착을 하니, 옷은 아니고, 평소 내 집에 있던, 가장 낡은 면 이불이 한 장 있었는데, 어쨌든 나는 이 걸 들고 다시 나오려 했다.

그 방에 도착하면서 한 가지 놀라운 광경이 있었는데, 호텔 방이었다.

그 호텔 방에서 검은 턱시도를 입은 키 큰 남성이, 어떤 여성을 깔고 누워 있었는데, 이 건 둘이 옷을 입은 채로 교합을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떤 성적인 느낌이나, 야하다는 생각이 들기 보단,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아무 부끄럼도 없나?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 지. 사람들 안 보이는 데 가서 하지."


그러건 말건, 이불을 챙겼으니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돌아 가려는 찰나, 다른 여직원들이 서넛 보이는데, 저마다 다른 복장이면서도 방금 나를 도와 주었던 그 여직원처럼 아주 아름다우면서도 단정하게 잘 꾸민 미모의 여직원들이었다.

전부 나한테 상냥한 태도였고, 나를 좋은 모습으로 대해 줘서 아주 기쁘고 사랑스런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에는 그 호텔을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 왔는 지, 안 내려 왔는 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그렇게 꿈은 끝이 났다.


어쨌건 간에 내가 여태까지 인간으로 살면서 느꼈던 그런 감정이 아닌, 굉장히 묘하디 묘하며, 신비롭디 신비로운, 신령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런 꿈이었다.

이 외에 매우 의미심장한 선몽을 몇 번 꾼 적은 있으나, 이렇게 감동스런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꿈을 꾸고 나서 잠도 같이 깼는데, 정신이 아주 차분하고 맑은 상태였고, 평소같으면 몸이 찌뿌등했을 텐데, 그런 것도 없이 가뿐하고 피로도 일체 없었다.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를 한 평생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코병이 하나 있었는데, 일시적이나마 많이 호전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기대도, 전혀 예상도 없었는데, 그냥 평소처럼 잠에 들었고, 다만 묘한 꿈 한 자락 꾸고 일어 났을 뿐인데, 갑자기.

마치, 암 말기 환자가 갑자기 산에 들어 가서 살았더니 나았다, 종교를 열심히 믿고 기도를 했더니 병이 치료가 되었다는 식의 기적이 내게도 일어 난 것 같았다.

물론, 아직은 조금 더 지켜 봐야 할 일이고, 일시적으로 완화된 것일 수도 있겠다.

평소에, 특히나 요즘 같이 추울 때는 이 지긋지긋한 코병은 내 한 쪽 코를 완전 꽁꽁 막아 버려서, 아예 숨 한 방울 쉬지도 못 하게 막아 버린다.

그렇게 지독하고 지긋지긋한 지병이었다.

그런데, 거의 한 7~80 퍼센트가 완화되었다.

하도 이 코병이 심해서, 나는 나중에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되면 코수술 잘 하는 병원을 알아 볼 참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면, 왜 나에게 이런 꿈을 꾸어 졌을까?

요새 상담 손님이 꽤 늘었다.

원래 나는 완전 무명이었기 때문에, 뜨문뜨문 손님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추석 연휴 때부터 해서 갑작스레 점점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손님이 나한테 묻는 것 이상의, 손님이 원하는 것 이상의 큰 답변으로 돌려 준다.

그 사람은 나한테 콩 한 쪽을 달라는데, 나는 커다란 수박 덩어리로 돌려 준다.

생각의 틀에 갇힌 사람, 그 틀을 부숴서 방생시켜 주고, 환상을 가진 사람, 환상을 깨 주고, 헤매고 있는 사람, 길을 알려 주고, 자기 모습이 얼마나 괴이한 지 모르고 살아 가는 사람, 거울로 비춰 주고.

난 그런 식이었다.


돈을 받았으니 일을 해야지, 이런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잘 되도록 내가 풀어 준다면, 나도 덩달아 보답받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그 사람한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것을 채워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일을 했다.

이 시간과 노력을 최저임금 환산하면,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다.

노동의 가치로 계산을 하면 그런 것이고, 저 사람이 잘 되는 만큼 내가 보답받는 것이고, 이는 지금 나한테 달린 것인데, 이 게 왜 헛수고란 말인가.

그래서 그런 걸 따지지 않고 많은 걸 퍼서 담아 주기 위해 심혈을 많이 기울였다.


지금 그동안의 나의 노력이 쌓여서 드디어 보답으로 돌아 온 것이려나.

어쩌면, 누군가는 지금 본인 기대 이상으로 엄청나게 삶이 풀려서 많이 좋아 졌나 보다.

아니면, 내가 미흡하더라도 내 노력을 가상히 여겼을 수도 있고.

그 게 무엇이든 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겠지.

나는 누가 나한테 도움을 청해 오더라도 나는 이 전과 똑같이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퍼 담아 줄 것이고, 더 많이 담아 주기 위해 지금도 나는 많이 챙기고 있다.


이 것과 관련해서 나한테 이런 꿈이 꾸어 지지 않을 리 없다.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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