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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속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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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Oct 28. 2023

이사를 오고

이사를 온 지는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 놈의 성격 탓이다.

뭐든 지 반듯해야 하고, 모든 것이 딱딱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있어야 하고, 결벽증 환자처럼은 못 되더라도, 기본적인 청소 상태는 항상 돼 있어야 하고.


이사 준비부터 애로사항이 많았고, 이사를 와도 내 마음 상태는 항상 아직도 이사 후 뒷 정리 중이었다.

지금이야 많이 한시름 놨지만, 아직도다.


때는 벌써 유난히도 뜨거웠던, 아니, 지독하게 쪘던 지난 여름부터 시작된다.

이사 업체를 몇 군데 견적을 넣었다.

처음에는 부동산에서 소개해 준, 이사 갈 지역의 이사업체였다.

와서 짐량이라던가, 집기들을 직접 보고 견적을 내야 뒷말이 없을 것 같아서 한 번 오면 어떻겠느냐고 해도, 멀어서 못 오겠다더라.

그렇게 내 준 견적이 2 톤 반 견적이 90만 원이었다.

요즘 시세를 몰랐지만, 비싼 것 같지는 않았다.


다음에는 이웃집 아저씨가 추천해 준 현지 업체였다.

이 지역에서는 나름 입소문 나고, 꼼꼼하게 잘 해 주고, 견적도 괜찮다고 하니.

첫 인상은 친절하고 괜찮았다.

그런데, 부른 견적이 무려, '140'이었다.

요즘 시세가 그러냐고, 좀 센 것 같다고 얘기를 하니, 겨우 10을 빼 주더라.

다음 업체는 짐을 보고, 나한테 이전 업체에서 얼마에 왔냐고 묻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100'을 불렀다.

괜찮은 금액이었지만, 한 군데만 더 견적 내 보고 판단코저, 일단 명함만 받고 돌려 보냈다.


다음 업체는 내가 그 집에 이사를 왔을 적에 사다리차 일을 해 준 업체였다.

나는 전혀 기억이 없었는데, 자기가 와 본 기억이 있다고 하니.

찬찬히 짐을 둘러 보고, 그렇게 내 준 견적이 어처구니가 없는 '160'이었다.

말로는 잘 해 준다, 어쩐다, 다른 업체는 못 한다는 교활한 상술 멘트와 함께.

내가 다른 업체에서 '140'을 받았는데, 그 정도는 맞춰 줄 수 없냐고 하니까, 맞춰 주기는 했다.


고심 끝 내 결정은 100을 부른 업체에서 진행을 하기로 했다.

처음에 90을 부른 타지 업체가 싸기는 했어도, 짐양을 보지도 않고 낸 견적은 조금 불신스러웠다.

행여나, 오고 나서 추가 금액을 요구할까 봐.

길게 쓰기는 곤란하지만, 은근슬쩍 식대를 내가 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던가, 덥다며 팀장 급 아줌마는 날보고 음료수를 사 달라고 한다.

사전에 이런 부분도 내가 확인차 물어 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식대는 한 5만 원 가량 나왔고, 한여름이라 음료수 정도는 사 줄 수는 있는데, 나하고 계약 때 명료하게 타협본 것은 없지 않은가.

다툼의 여지가 있었지만, 이사통에 정신 없는 상황에서 싸우면 손해인 것은 나이니.


그래도, 큰 탈 없이 이사는 마쳐서 다행이다.

글쎄, 아마 그 업체를 절대 만날 일은 없겠지만, 이 금액에 어떤 업체를 불러도 비슷했을 것이다.

한 이틀 동안은 정리되지 않은 짐으로 엉망인 채 생활을 했고, 사흘 돼서야 조금 자리가 잡혔다.

어차피 세세한 정리는 결국 내 손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었으므로, 그냥 박스만 빼고 간 게 태반이다.


집 자체는 참 좋았다.

터도 좋았고, 집도 좋은 자재만 엄선해서 심혈을 기울여 지은 테가 났다.

별도로 창고처럼 쓸 수 있는 큰 비닐 하우스도 딸려 있으니, 짐이 많아도 공간 활용을 하기 좋았다.

문제는 이사 후 뒷 정리까지 끝낸 게 다가 아니었다.

전에 살던 사람은 실거주를 거의 하지 않아, 집이 방치된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 부동산 중개를 통해 집을 봤을 때는 이런 것을 전혀 캐치하지 못 했다.

워낙 집이 깨끗해 보였고, 실생활이 별로 없었으므로 하자도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데 웬걸, 실생활을 안 해서 하자가 없는 게 아니라, 실생활을 안 해서 하자가 많았다.

왜?

방치되었기 때문.


가장 경악을 하고 애를 먹은 것이, 주방 수전에서 불순물이 나온 것이었다.

도저히 부유물이 떠다니는 물로 식수를 쓸 순 없었다.

이는, 세면대도 마찬가지였는데, 욕조 수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럼, 이는 이 집 수도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 호스의 물이 장기간 고여 있는 걸로 인해 불순물이 발생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었다.

왜 호스가 없이 배관에서 다이렉트로 나오는 욕조 수전에는 이물질이 없고, 호스가 있는 수전만 불순물이 나오는 것일까.

원인은 호스였고, 우선적으로 세면대 호스를 교체해서 해결했다.


싱크대 호스가 문제였는데, 일반적인 규격으로 교체할 수 없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몰라서 이 게 뭔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것은 호스에 딸린 전체 수전 자체를 통으로 갈아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우선적으로 수전 헤드에 필터가 달린 부품으로 교체해서 쓰고 있는데, 이물질을 걸러 갈색이 된 필터를 보면, 식수를 쓸 때마다 찜찜함을 흐트릴 수 없었다.


그 다음에 심각한 문제는 화장실 냄새.

처음에는 워낙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 있어서 몰랐는데, 담배 냄새를 피톤치드 향으로 중화시키고 나니까, 이제는 하수구 냄새가 심하게 났다.

화장실은 오수 배관이 있고, 하수 배관이 있는데, 냄새가 아주 고약하고 쎄한 걸 보니, 이 건 분명한 정화조 냄새였다.

원인을 찾기 매우 어려웠다.

냄새는 이미 화장실에 가득 퍼진 상태였고, 이 게 어디서 나는 것인 지 알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세면대 트랩, 바닥 트랩을 의심해 봤다.

일부 틈이 있는 걸 체크해서 막아 놨음에도 냄새는 여전하고.

그렇게 한 달 가량 씨름을 하다가 욕조 틈, 욕조 벽틈에서 냄새가 나오는 걸 일단 막아 뒀다.


이 건 알고 보면 꽤 심각한 문제이다.

정화조 냄새가 벽틈에서 난다는 것 자체가, 정화조 배관에 유격이 있어서, 이 냄새가 벽에 지금 가득하다는 것이니까.

설비 시공할 당시부터 이 것은 중대한 문제를 안고서 공사를 마친 것이고, 여태까지 집주인은 이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은, 세입자들도 원인을 모르면서 그냥 산 것 같다.

나는 뭣도 모르고 이런 집을 덜컥 계약한 것이고.

이 걸 제대로 잡으려면 설비 업자를 불러서 욕조를 뜯던, 변기를 뜯던, 심각한 경우에는 해머 드릴로 바닥을 뜯어야 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겠다.

그래야 배관 유격을 찾아서 틈을 매꿀 수 있으니.

이러면 견적도 크게 뛰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뒷 정리도 힘들어 진다.


더욱 심각한 건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 후에도 덜하긴 해도 냄새가 여전했는데, 또 며칠을 씨름하다 발견하게 된 것이 변기 쪽 콘센트 틈, 앵글 밸브 쪽 틈, 그리고, 변기 뒷 편의 틈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랫 쪽 깊은 배관에 틈이 크게 있지 않으면, 이렇게 욕조와 변기에 동시에 냄새가 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큰 하자이다.

애로사항은 냄새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참 찾기 어려웠는데, 이 원인 찾는 데까지 한 2 달 조금 안 되었다.

페브리즈를 아무리 뿌려 봐도 냄새를 덮는 것일 뿐, 근본 해결책은 못 되는 것이 여기 있었다.

지금이야 대충 테이프로 막아 놔서 해결했다지만, 나중에 집주인한테 이 부분은 큰 소리 칠 작정이다.

원래대로라면 충분히 귀찮게 할 수 있었지만, 나는 말하느니, 내가 해 버리는 게 편하고 빠른 사람이라.


그 밖에도 일일히 말 다 못 할 정도로 잔하자들이 참 많았다.

꼼꼼한 내가 보기엔.

거기다 상담일은 왜 그리 갑자기 몰리던 지.

미처 하지 못 한 뒷정리며, 이사 오고 나서 불필요한 짐들, 필요한 것들 다시 구비하랴, 집 안의 하자 잡으랴, 생업하랴, 밀린 살림 하랴, 게다가 성격이 워낙 철두철미한 지라, 청소부터 뭐든 대충하는 법이 없어서 두 달 동안 오로지 집안 일과 이사 후 뒷 정리만으로 오롯이 보냈다.

이사 오기 전에 나름 짐정리도 많이 하고, 준비도 그럭저럭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러 가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다 보니까, 이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나한테는 해야 할 것들이 아주 가득하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 현실이 되기 전까지 나는 아직도 이사 후 뒷 정리라 여기는 지라.

어제 유리창 청소, 그리고, 오늘 대청소 후 많이 안정감이 생겼다.

이제 조금 이사를 완전히 온 느낌이 든다.


거실에는 통유리창이 크게 나 있고, 밖에는 큰 창을 통해 멋진 산의 주령이 오롯이 집안에 들어 온다.

큰 통유리창을 등진 채, 스타벅스에 있는 통나무 바 테이블이 길쭉하게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탄노이 스피커와 자디스 진공관 앰프가 놓여 있다.

실내에는 일부 황토 벽돌을 쌓아 올렸고, 나머지는 편백 루바로 벽 전체를 둘렀다.

거실 한 켠에는 전에 살던 집주인한테 산 3인용 쇼파가 자리하고, 통유리창을 정면으로 보는 좋은 자리에는 1인 쇼파를 놓았다.

손님이 왔을 때 잔잔하게 음악 틀어 놓고 접대하면 아주 좋을 것이다.


오면서 고생 참 많이 했다.

여태까지 이렇게 고생스런 이사는 처음이었다.

처음 계약부터 난항이 있었고, 자칫 서로 간의 신경전 때문에 계약이 도중에 파기될 뻔 하기도 했다.

집 계약을 하는 것도 서로 셈법에 의해 여러 변수들이 많은 지라.

이사만 문제가 아니라, 뒷 정리가 마무리되지 못 한 상황에서 하자도 같이 잡아야 했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발생하니, 나한테도 과부하가 걸리더라.


지금은 아주 전망 좋은 집에서, 그 것도 독채로 이웃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산다.

전에 살던 데도 넓은 평수를 편하게 쓴 장점도 있지만, 지금 이사 온 곳이 평수는 좁아도 월등히 좋다.

사실, 나한테는 내 인생의 두 달 어치를 거의 까 먹은 것 같다.

하자 잡는 데 하도 고생스러우니까, 중간에 조금 후회스런 심정도 들었다.

그래도 이런 좋은 집에 오래 살게 될 것 같은 기대감, 물 맑고 조용하고, 하늘 청명하고, 쇼파에 앉으면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 오는 근사한 전망을 보고 있으면 여태까지 했던 고생이 다 보람으로 가슴에서 승화가 됨을 느낀다.


아직도 해야 할 게 많지만, 그동안 잘 살 수 있도록 집을 내어 주신 전 집주인 분께 감사하고, 헌 집 대신 새 집을 내어 주신 새 주인 분께도 감사하다.

변변치 않은 돈을 싸 들고 이런 집을 구하기란, 전국을 다 찾아 봐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좋지 않은 계기로 이사를 결심했지만, 이사하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다.

내 삶이 한 단계 도약한 느낌까지 든다.

이제, 여기서 더 크게 도약하기 위한 기나 긴 겨울잠을 다짐해야겠지.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 이 글을 쓰고자 생각은 가득했으나, 늘 가득한 일상 속에 뒷전이 되어, 오늘 겨우 한 숨 돌리고 갈무리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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