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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속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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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Oct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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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 많은데, 써 내려 가고 싶은 생각들은 너무 많은데.

왠지 글이 써 지지가 않는다.

무슨 말을, 어떤 주제를 정해서 써야 할 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벌써, 그렇게 맹하게 켜 진 컴퓨터 앞에 30 분 넘게 앉아만 있다.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할 지 궁리를 해 봐도, 무의미한 끄적거림 밖에 될 것 같지 않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읽힐 좋은 소재들은 늘 많았다.

다만, "아, 비로소 써 봐야겠다!"는 결심에 도달할 정도로 정리가 되지 않았을 뿐.


이상한 하루였다.

내 기운을 글로써 발산하고픈데, 통채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 보통 좋은 글들이 많이 술술 나온다.

나름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들을 회상해 보건만, 뭔가 문장의 마침표가 찍어 지지 않는다.


그래서 쓰고 있는 것이 지금의 글이다.

지금의 이 상황을,

쓰기로 했다.


지금에사 비로소 돌이켜 본다.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일까,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일까?

나는 나를 위해 쓰는 글이 그래도 독자들을 위해 쓴다는 신념으로 일방적으로 글을 써 왔다.

철저히, 세상의 시류에도, 남들이 어떻다는 바람에 휩쓸리지 않으며, 나 자신을 지키면서 글을 쓰고자 했다.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면서, 타 블로거들과 친분을 맺지도, 적극적으로 댓글을 유도하면서 소통하지도, 아무튼 그런 면에서 철저히 배타적이었다.

건방진 소리겠지만, 남들 하는 만큼 따라서 하는 것 따위는 지극히도 싫었다.

무슨, 흔해 빠진 요리 레시피도 싫고, 돌고 도는 재테크, 주식이 어쩌구도 싫다.

세속적인 것에 완전히 초연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속적인 것에 영합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글루스부터 시작해서, 브런치로 정착한 블로그 활동도 늘 그래왔다.

요 사이, 이따금 조회수가 높은 세속적인 글들을 비공개 처리해 버렸다.

그런 글들이 의외로 꾸준히 내 블로그 유입에 큰 보탬이 되지만, 내가 배너를 붙여서 수익을 얻고자 함도 아니고, 파워 블로거처럼 트렌드를 좇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지금은 내 블로그의 색깔만 흐린다고 생각해서 비공개 처리해 버렸다.

그랬더니, 하루 방문자 수가 한 30% 가량 넘게 줄어 들었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해 내고, 남들이 가지지 못 한 것을 선뜻 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살아 간다.

블로그 활동도 미약하지만, 그런 일환으로 내 고유한 색깔을 유지하면서 이어 가고 있다.

하트 수도 목적이 아니고, 구독자, 방문자 수 늘리기도 목적이 아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와서 주목을 받으면, 나도 우선 기분은 좋다.

그런데, 내 블로그에 방문해서 그들이 세상에 없는 것을 얻어 가는 것이 소기의 목적인데, 정말 그 역할을 제대로 해 내고 있느냐를 이 순간에 되짚어 보는 것이다.


이 세상에 없는 유일한 것, 나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것, 그 것은 내 전유물이 아니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해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명해도, 그 것이 그 개인 소유물에 그친다면, 누구도 에디슨을 역사에 기억할 이유도, 스티브 잡스를 역사에 위대한 인물로 기억할 이유가 하등 없다.

세상에 없는 독보적인 것을 창조해서 그 것을 온 누리에 나눴을 적에, 그 혜택을 본 만인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죽어서도 그를 기리는 것이다.


나는 일방적으로 세상의 혜택을 받고만 살고 있음을 조금은 안다.

만일, 그들이 정말 부족함이 없이 행복하게 자기 완결적으로 살아 간다면, 나도 그 속에 파 묻혀서 완전하게 살아 가면 된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이 가질 수 없는 아주 희소하고 특질적인 무언가를 가지지 못 하는데, 누군가는 그 것을 발견하고, 창조해서 세상에 꺼내 놓는다.

성경책에는 예수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했다고 하는데, 그 것을 만일 기적이라고 한다면, 역사 속 만인을 위해 엄청나게 공헌한 사람들 모두 기적을 행했다고 해야 옳다.


나는 사람된 도리의 일환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그들이 돕고 있음을 알고, 그에 대한 마땅하 보답으로써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해 냄으로써 갚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그들은 장님인 반면, 나는 앞을 볼 수 있으나, 앉은뱅이라면.

나는 장님 등에 엎혀서 올바른 길을 제시해서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게 해 주고, 나는 비록 길을 안다 하더라도 십리길을 혼자서 가지 못 하는 앉은뱅이이기에,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도우면서 상생한다면, 모두가 같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블로그 활동 또한 그런 일환으로, 내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관점에서 세상과 사물, 인물들을 바라 보고 느낀 점을 게재해게 됐다.

남들이 하는 소리를 똑같이 판박이로 할 것이라면,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

쌀이 많은 사람한테 쌀을 많이 준들, 그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쌀 대신 생선이 필요로한 사람에게 쌀이 아니라, 생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도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작은 새끼지만, 별로 먹잘 것도 없는 것이지만, 쌀 대신 한 토막의 생선을 바치고자 한다.

그 생선의 맛은, 필시, 쌀 몇 백 가마니와 비교할 수 없는 진미일 것임을 장담하고 장담한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조금이나마 더 많은 생선을 잡아서 당신들한테 드릴 지, 내지는, 어떻게 하면 더 맛 좋은 생선을 잡아서 바칠 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직 성에 안 찬다면, 기다리시라.

내 숨이 다 하는 그 때까지, 아니, 저승에서라도 월척을 잡아서 바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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