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뜬금없이 미국에서 교사가 되었나 - (2)
제가 미국으로 이민을 온 것은 2010년 4월이었답니다. 제가 1980년 겨울 생이니까 2012년엔 만으로 31살이었겠지요? 2012년은 제가 미국에 왔을 때부터 남편이 권했지만 고집을 부리며 하지 않던 일을 시작한 해입니다. 바로 미국 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어요. 제 영어가 ESL 클래스에 다닐 정도의 낮은 수준은 아니었기에 남편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수업을 이것저것 들어보며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길 권했었지요. 남편 역시 미국에 유학을 와 정착한 케이스였기에 아무래도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미국에서 학교를 하나 나오는 편이 좋다는 걸 알았던 겁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학교를 막 졸업하고 와서 그나마 배운 것도 써먹지 못하며 쭈구리가 되어가던 저는 굳이 이 나이에 여기서 학교는 뭐 하려고 또 다니냐며 죽어라고 말을 안 듣다가 -여러분, 남편이 학교 보내준다고 할 땐 무조건 다니십시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등록금이 얼만데!- 여러 차례 현실에서의 한계와 쓴 맛을 본 2012년이 되어서야 학교에 다닐 결심을 했습니다. 그저 학위를 빨리 따고자 했더라면 대학교에 편입을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제가 한국과 일본에서 전공한 것들을 이어서 공부해서 학위를 딸 생각은 없었고 전혀 다른 걸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학사학위를 딸 때 어느 대학이든 공통적으로 필요한 Core Curriculum(공통필수?) 과목들 위주로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일반 대학에 비해 학비가 저렴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막 싸진 않아요. 2012년 당시에 한 학기에 천 몇백 불은 내야 네 과목 정도 들었으니까요. 아무튼 결심을 하고 학교에 등록을 하려는데, 그때 처음으로 미국에서의 내 존재의 미미함을 깨달았습니다. 미국 시민권자의 배우자로 미국 입국과 동시에 영주권을 받아 2년 넘게 살고 있는 나지만, 남편의 소득과 소속 증명, 텍사스 내에 1년 이상 거주했다는 주소지 증명을 위한 공과금 고지서, 즉 남편 이름으로 된 모든 서류.... 가 없이는 미국에 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하나도 없더군요. 등록 절차에 필요한 모든 서류는 남편이 받아다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때의 충격이란.. 나는 여기서 아직 사람이 아니구나 싶은 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일본어로 하면 이찌닝마에.. 저는 그냥 저로서는 一人前가 아니었어요.
일단은 관심분야이던 심리학개론, 그리고 남들이 추천하던 전공인 회계학 수업을 몇 개 들어보았습니다. 회계를 하면 취업이 쉽다나. 어카운팅 말입니다. 회계학 수업을 일주일 듣고 나서 저는 알았습니다. 이 길은 결단코 나의 길이 아님을. 모든 것이 외계어였거든요. 어휘는 이해가 가는데 개념을 전혀 모르겠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났습니다. 그래서 그 수업들은 일찌감치 드랍해 버렸는데, 심리학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여름 학기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재밌던 심리학마저 드랍해야하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제가 임신을 했는데, 하혈이 심해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으라는 베드레스트 처방을 받은 겁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임신기간이 시작되었고, 학교를 포기한 채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학위를 받는 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걸리게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