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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bechu 얀베츄 Aug 09. 2023

조금 길지만 제 이민살이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왜 뜬금없이 미국에서 교사가 되었나 - (1)

교사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일까요.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은 아닐거라는 게 처음 드는 인상입니다. 아이들과 교류하며 무언가를 전달하고 나누며 누군가의 인생에 이름 석 자가 기억될만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무척 보람되고 특별한 일임에 틀림 없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이 점점 교사가 교단을 떠나게 만드는 현실일거예요.


제가 미국에 이민와 살면서 교사가 되고싶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에 우연이 거듭되어서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게 많이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몰랐고, 그러나 무언가를 하고자 했고, 파다 파다 닿은 곳이 여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좀 풀어내야 할 것 같으니, 한 번 들어보십시다.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약간의 사회생활을 겪다가 만 26살에 늦깎이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어학교부터 시작해 일본어를 배우고 도쿄에 있는 요리학교에 입학했어요. 2년간의 풀타임 코스로 참 힘들고 학비도 비싸고 몸이 고되기도 한 학교생활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2학년 때 우연히 친구를 통해 만난 남편과 누가 들으면 믿지 않을 속도로 사랑에 빠졌고 국제결혼을 하게 되었고 졸업을 하면서 미국으로 따라 오게 되었어요. 그냥 학교 잘 다니고 졸업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친정 집에서 베이커리라도 열어야지 같은 막연한 듯 혹은 자연스러운 꿈을 꾸던, 구움과자를 좋아하던 20대의 제 인생은 그렇게 호다닥 찾아온 연애에 눈이 멀어 (...) 완.전.히 뒤집혀버렸습니다. 아주 행복하게 또 급박하게요.


그리고 서른이 다 되어 시작된 미국 생활.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우울했던게 아닌가 싶어요. 당시 네시 반, 다섯시면 퇴근하던 남편이 맥주라도 한 잔 하러 나가자고 매일같이 꼬셔도 영 나가 놀 기분이 들지 않더라고요. 따라나가도 재미도 없고, 워낙에 집순이인 성격이라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미국인지도 상관 없을 정도로 그냥 집콕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영어를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막상 영어권 나라에서 생활해본 것은 처음인지라 수퍼마켓에 가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달까요. 그냥 의례히 묻는 점원의 말들 -비닐봉지 줄까 종이봉투 줄까? 포인트카드 있어? 같은 매번 묻는 말들- 도 귀에서 튕겨나가는 것 같았고, 그런 간단한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자괴감이라든가, 일본어도 배워서 일본에서도 살았는데, 그 때도 불편을 얼마나 많이 겪었는데(어딘가에 전화문의라도 할라 치면 왜 그렇게 어렵던지, 그리고 단지 말이 짧다는 이유로 모자라보이는 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던지.. 외국 살이라는게 참 그렇지요) 또 나라를 옮겨 같은 과정을 또 겪어야 하는 것도 억울하고 말이죠.


처음 미국에 와서 한 2주정도 지나니까 조금 지루해졌어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이것 저것 뒤지다가 한인이 하는 소매점의 사무실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관리하는 일을 찾아 시급 8불을 받으면서 몇 달을 일해보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심지어 차도 없어서 다른 직원의 도움을 받거나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었어요. 그래도 다른 직원들과 한국말로 수다떠는 재미로 한창 재미나게 다니다가 저와 동갑인 사장의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 뒀었죠. 지금 생각하니 그냥 제가 배가 불렀던 것 같아요. 꼭 나가서 일을 해야한다는 절박함도 없었고, 내가 이런 데서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같은 생각도 늘 있었던 것 같고요. 그 후로도 몇 군데의 사무직을 경험했지만 비슷한 이유나 핑계로 그만두곤 했습니다. 한인 업체는 왜인지 불편하더라고요.

요리 관련된 일은 가장 오래 했는데 쿠킹 클래스에서 강사의 보조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요리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일본에서 알아주는 학교였던 데다가 영어가 자신 없어도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저는 무작정 이력서를 만들어서 매장으로 찾아가 매니저를 불러달라 했었지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요? 매니저는 그 자리에서 저를 채용했고 그렇게 시작한 일은 비록 밤늦게 끝나는 날이 많았고 시급이 매우 적었지만 재료를 계량하고 준비하고 정리하는 일이 워낙 적성에 맞기도 했고 일도 센스있게 잘 해서 강사들이 저를 참 좋아했어요. 말대신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아서 좋기도 했어요.


이 때 여름 방학에 아이들이 참여하는 쿠킹클래스를 진행하며 아이들과 함께 해봤는데 꽤 재미있더라고요. 사실 저는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돌이켜보면 이 때 찍은 점 하나도 지금까지의 줄을 긋는 데 필요했지 않나 싶네요. 제가 지금 가르치는 일도 요리와 관련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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