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가능하다면 정말 이만한 일이 없겠다! 싶으니까 왠지 활기가 났습니다. 이리저리 지역에 어떤 기관들이 있는지 보니 몇 군데에 소규모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들이 있더라고요. 벌써 BTS가 인기를 얻고 한국 드라마 팬도 많아진 무렵이었으니까요. 그중 가장자리를 잡은 듯 보이는 곳은 한국 영사관 부설의 한국 문화원이었는데 그곳은 평일 저녁 7시쯤에만 수업이 있어서 아예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런데 검색하다 우연히 얻어걸린 곳이 있었으니, 한 공립학교를 빌려 토요일마다 한국어 강좌를 하는 어떤 사설 기관이었죠. 일단 그곳에 이메일을 보내 이차저차 관심이 있는데 크게 경력은 없고 전공자도 아니지만 자원봉사라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뭐 하나 꽂히면 뒤도 안 돌아보고 순간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는 편...)
그 한국어학교의 교장이라는 분은 본인이 그 공립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이니 평일에 한 번 오라고, 만나보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아이가 프리스쿨에 가있는 사이 그 학교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공립학교 내의 유치원 원장을 하시는 교사분이었어요. 제가 그때 나이가 만 서른다섯 쯤이었는데 본인은 한국에서 초등교사 일을 오래 하다가 중학생이던 딸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스물아홉에 아이들을 데리고 이민을 오기 위해 대학원에 유학을 먼저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뭔가 해보고 싶다 하는 저를 남일같이 안 보셨는지 호의적으로 도와주시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처럼 "저 한국어 가르치게 해 주세요" 하고 먼저 연락을 해온 사람은 처음 보신 것 같았는데, 일단 가장 기초 반인 레벨 1에서 강의하시는 분을 도와 함께 일해보라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레벨 1에 학생이 제일 많으니까요. 그렇게 곧 개강하는 새 학기에 맞추어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마다 세 시간씩 수업하고 4개월 정도 해서 한 학기로 운영을 한다고 해요. 이때만 해도 다른 강사들은 다 뭔가 엄청난 경력이나 자격이 있는 줄 알았었어요.
그렇게 첫날 출근을 했는데, 교장 왈 레벨 1을 맡으려던 강사가 사정상 그만두게 되었으니 저더러 레벨 1을 맡아서 가르치라는 겁니다. 네....????? 전 누가 가르치는 걸 참관해 본 적도 없는데요....? 그냥 괜찮을 거랍니다. 잘해보랍니다. 그렇게... 벌벌 떨며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무려 30명의 학생들을요. 중학생부터 저보다 나이 많은 성인까지, 다양하게 모여있는 취미반이었던 거죠.
저는 정말 가진 게 없었거든요. 교장선생님이 주신 기초반 교재 말고는 다른 자료도 없었고, 레슨 플랜은커녕 부교재도 없었고, 무엇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세 시간을 뭘 하며 때워야 할지도 몰랐고 거기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어로 떠들어야 하는 거였어요. 멀리서부터 돈을 내고 주말 시간을 할애해 찾아오는 학생들 모두가 저를 마음속으로 평가할 거라 상상하니 시작도 전부터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요. 그때, 남편이 늘 하는 말을 기억하며 어깨를 딱 펴려고 노력하며 교실에 들어섰지요. "Enter the room like you own the place." 몰라도 다 아는 사람인 양 fake 하라는 거죠. 기선제압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