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9. 북방산개구리
그들이 깨어났다. 바위틈에서 낙엽 아래에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세운다. 잠시 주변을 살피는가 싶더니 갑자기 툭-툭- 몸을 던져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숲 속을 흐르는 개울과 연못마다 형언할 수 없는 서늘한 울음소리와 갈피를 잡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차가운 봄바람 속에 뒤섞인다.
좀비영화의 도입부가 아니다. 수목원에 노란 풍년화가 피기 시작할 무렵이면 북방산개구리 Rana dybowskii 들의 힘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긴 동면에서 깨어나 오로지 짝을 찾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는 녀석들 때문에 산책 나왔던 관람객들이 깜짝 놀라는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밟힐 뻔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일생일대의 순간이다. 작은 앞발로 암컷의 등에 꼭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뛸 때마다 봇짐처럼 위아래로 덜거덕 거리는 모양새가 영 좋지 않지만, 그 역시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산개구리의 삶의 목표가 '종족번식'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희는 먹이사슬의 중간자로서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돕고 있습니다. 앞에 계신 여러분과 다르게 말이죠.'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해 줄 리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한 가지, 대부분 생명체들처럼 때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사람이 다른 생명체들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청개구리처럼 '철이 없다'는 것 아닐까. 걸어갈 길을 달려가고, 내일 걱정을 오늘 하고, 잠잘 시간에는 깨어 있고, 지금 할 것은 나중으로 미룬다. 그 덕분에 이렇게 휘황찬란한 세상에 살아남기는 했는데, 그래서 살만하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외.롭.다. 인터넷으로 세계는 마을이 되고 소셜미디어로 인간관계는 촘촘해지고 AI가 알아서 척척 내 조건에 맞는 사람을 소개해 주는데. 공중파와 넷플릭스에는 '짝짓기' 프로그램이 끊이질 않는데. 도대체 왜? 연애 한 번 못하고 혼자 외롭게 늙어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을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일이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는 남들과 다르게 시간이 흐르고 배경과 다르게 공간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때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 것들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두고두고 살아갈 양분이 된다. 그것들은 벼락치기 공부나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안정된 자리(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를 잡은 뒤에라도,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그런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때의 나'와는 같지 않겠지만. 험난하고 길고 긴 것이 인생이니 결코 늦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올봄에는 용기 내서 연애를 시작해 보시는 게 어떨는지.
’다 때가 있다‘를 검색하면 때수건(이태리타올이라고 불렀었죠) 이미지가 가장 윗줄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