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0. 목련
휴일 이른 아침 차를 몰아 서해안고속도로에 오른 지 두 시간 만에 충남 태안 끝자락, 모항항에 도착했다. 모항-항(발음하기 참 어렵죠). 항구에는 오가는 배도 사람도 없이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위해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소박한 백반이나 따끈한 국밥을 기대했는데, 가능한 메뉴는 우럭젓국과 게국지뿐이라는 상냥한 듯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거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찾은 오늘의 진짜 목적지는 항구에서 5분 거리의 천리포 수목원. 초입의 오솔길을 지나 큰 연못정원에 들어서자 수도권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낯선 식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실거리나무, 왕초피나무, 삼지닥나무, 호랑가시나무... 주로 남부지방과 제주에서 자생하는 이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천리포수목원이 보유하고 있는 컬렉션은 세계적인 수준인데, 특히 목련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840여 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먼저 수집한 목련은 우리나라 자생종인 함박꽃나무 Magnolia sieboldii / Korean Mountain Magnolia. 함박꽃나무는 이른 여름, 숲이 초록으로 가득할 때 하얗게 피어나는데 은은하면서도 우아한 그 향기 속을 걷다 보면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목련은 1억 년 전(은행나무는 무려 2억 년 전이라고 하는군요!) 공룡이 살고 있을 때 등장한 식물로, 꽃받침과 꽃잎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큰 꽃을 피운다. 육상에 등장한 최초의 꽃이 태산목 Magnolia grandflora을 닮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목련이 등장했을 때는 아직 벌과 나비가 생기기 전이라서 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꽃가루와 향기만으로 딱정벌레를 매개체 삼아 수분을 해왔다고 한다.
수목원을 반 바퀴 돌아 소나무 언덕에 닿았다. 물 빠진 바닷가에 외롭게 앉은 섬 하나가 보였다. 그 앞까지 바닷길이 열려 있었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내려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언덕을 내려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사위가 조용하고 포근하다. 60여 년 전 이곳에 도착한 칼 페리스 밀러 Carl Ferris Miller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이 소나무 숲에서 오랫동안 외롭고 상처받았던 마음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이곳이 그의 마음에 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무슨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휴일을 보낼 작은 집을 짓고 주변에 나무 몇 그루 심으려 했을 뿐이었다. 요새 말로 5도 2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내놓은 땅을 하나하나 사들이다 보니 어느새 십만 여 평이 넘게 되었고,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수목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 오십이었다.
다음 주부터 이곳에서 목련 축제가 시작된다. 특히 올해에는 그동안 비공개구역이었던 산정목련원을 가드너의 해설을 들으며 걸어볼 수 있는 기회가 처음으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