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게 당한 만큼 갚아주마
학교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그다지 즐겨보지 않는다. 선악으로 극명하게 구별되는 등장인물들의 과장된 캐릭터와 실제 학교 현실과 동떨어진 일부 설정이 종종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30년 넘게 교직생활을 했다는, 그래서 학교에 대해서는 알만큼 다 안다는 내 고집스러운 자만심과, 폭력이라는 주제가 주는 비호감 때문에 장안에 회자되고 있는 드라마 <더 글로리>의 시청을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공개되자마자 폭발적인 여론의 관심과 국내 시청률 고공행진에 이어 글로벌 순위 역시 세계 정상으로 우뚝 올라섰다고, <오징어 게임>의 뒤를 잇는 K-드라마의 흥행이라고, 언론에서 그토록 찬사를 보내고 있으니 이제라도 <더 글로리> 시청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글로리>는 학창 시절 당했던, 끔찍하게 잔인한 학교폭력으로 영혼까지 철저히 파괴된 여주인공이 치밀하게 계획한 복수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의 파장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우리 사회의 학교폭력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가해 학생들은 18살 동급생 문동은(송혜교 분)을 때리고, 밀치고, 뜨거운 고데기로 온몸의 살을 지지는 등 패악질의 끝판왕들이다. 고통받는 동은이를 빤히 보면서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고 비아냥거린다. 시청자들은 분노를 넘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구심을 느낄 만큼 섬뜩함을 경험했으리라.
하지만 돈도 없고, 뒷빽도 없었던 어린 동은이는 주위의 침묵과 방관을 홀로 견뎌야 했다. 학교도 경찰도 눈감고, 친모마저 외면하는 절망적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가해자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심은 치밀하게 계획된 복수 시나리오로 이어져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갈 뿐.
고데기로 지져진 상처투성이의 몸은 단지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기억조차하기 싫은, 실제 상황이었다. 드라마를 본 사람은 누구나 느꼈으리라. 가여운 학폭 피해자인 동은이가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에 함께 분노하면서 그녀의 복수를 어느새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또 가해자들의 뻔뻔함과 몰염치, 무법성에 분노 게이지가 폭발하여 드라마를 보는 데는 참을성이 매우 필요했다는 것을.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학폭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에만 거대 포털이나 언론에서 반짝 담론거리가 될 뿐,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졌다가 다시금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답답함을 말이다.
그런데 사실 드라마 속 동은이는 드라마 밖의 많은 동은이들보다 행운아일지 모른다.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 곁을 지켜면서 동은의 일이라면 만사 제치고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부유한 의사 남자친구도 있다. 또한 폭력 남편의 상흔으로 인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은의 편에서 도와주는 조력자 아줌마도 있다. 스크린 속 드라마가 우리의 현실과 다른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드라마 밖의 동은이는 총, 칼 하나 없이 전쟁터에 홀로 나간 어린내마냥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절망하고, 참을 수 없는 모멸감 속에 치욕스런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 아니던가.
<더 글로리>를 통해 그동안 산적해 있던 학교폭력의 난제들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면서 교육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왜 주인공은 사적인 복수를 해야만 했는지 더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학교폭력의 원인에 대해 더 심도있게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가 그 해결책 마련에 고심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더 확산되어야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제목이 ‘글로리’ 일지가 궁금했다. 작가는 말한다.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했다고. 왜 현실적인 보상이 아닌 사과를 받고 싶을까를 고민하다가 폭력의 순간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과 명예, 영광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고 말이다.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는 남을테지만, 진정성 있는 가해자의 사과는 피해자가 스스로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를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리라.
집주인 할머니에게 동은이는 고마움을 전한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주 작지만, 저에게 내민 도움의 손길을 기억합니다’라고. 학교폭력은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현재 진행형일지 모른다. 스크린이나 모니터 앞에서,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가해자의 추락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성공적으로 끝난 동은이의 통쾌한 복수극에 박수를 치기보다, 드라마의 흥행에 따라 열풍처럼 일었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학교폭력에 대한 우리의 이벤트성 관심보다, 우리 곁에 또 다른 동은이가 외롭게 웅크리고 앉아 우리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살펴보는 따뜻한 관심이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