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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바라기 Aug 30. 2023

예비 워킹맘들에게..

대기업 입사 3년 차에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임신했다


입사도 결혼도 임신도

모두 무계획.


이 회사를 들어가려고 한 적이 없었는데

이 남자랑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임신할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다.


어떻게 이런 큰 결정들이 모두 무계획이었을까

지금 와서 싶지만

인생이 어차피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흐르는 대로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기에

난 늘 본능에 내 몸과 운명을 맡겼던 것 같다.


입사 3년 차

이제 신입이자 막내 티를 벗고

후배도 맞이해서 누구를 가르칠 짬도 되고

미친 듯이 치열하게 일개미로 바쁠 때였다.

점심시간이 왔는지 퇴근시간이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쏟아지는 일을 처리해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임신..!


굉장히 규칙적인 생리기간을 자랑하던 터라

예정된 생리가 하루 늦어져서 테스트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선명한 두줄이었다.


주말에 바로 동네 산부인과를 가보니 4주였다..!


기쁨? 설렘? 벅참?


우리 부부는 그런 건 잘 몰랐고

피임 딱 한번 안 했는데 그게 골인을 할 줄이야..


주위에서 분명 아이가 그냥 생기는 게 아니고

1년 정도는 시간을 잡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우리는 하룻밤이면 되었나 보다


마냥 신기했지만 자리를 정말 잡을지

아닐지 몰랐기에 일단 기다렸고

감사하게 10주가 넘었고 가족들 먼저 알리고

회사에 알릴 마음의 준비를 했다.


너무나도 보수적인 회사를 다니던 터라

임신했다고 말하면 많은 남자 선배들이

놀릴(?) 게 뻔했다.

일단 그래도 팀장님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팀장님께만 살짝 10주라고 알려줬을 때

적지 않게 당황하던 팀장님의 모습


축하해라는 말은 당연히 없었고

“오… 그럼… 휴직하겠네..?”


당연한 반응이었다.


팀장이라면 팀원들을 꾸리는 사람으로서

한 명의 공백이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마침 옆팀에 여자 선배 한 명은 6개월 임신 중이었고

또 한 명은 출산 후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9개월을 내서 휴직 중이었다.


휴직 중이었던 여자 선배는 예쁨 많이 받던 선배였다.

일을 똑 부러지게 잘했고 임원들의 살림을 맡고 있어

많은 임원들의 챙김도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거의 우리 회사 최초로

육아휴직을 제일 길게 냈던 여자직원이었다.


6개월 임신 중이었던 선배는 사업부 눈엣가시였다.

유명한 OB의 딸이었고

일을 못하는데도 OB의 압박에 딱딱 승진을 하던..

난임이었는지 휴게실에서 배에 주사를 놓고

난임 휴가랑 난임 근무시간 조절 등

회사의 복지를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육아휴직이 최대 1년이었는데

휴직을 얼마나 언제 할 거냐는 팀장의 질문에

굉장히 고민이 되었다.




무계획으로 들어간 회사였지만

맡은 업무가 다행히 적성에 잘 맞았다.

일도 재밌었고, 선배들과의 캐미도 잘 맞았고

칭찬도 많이 듣고

이쁨도 많이 받고


자연스럽게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일 욕심이 폭발했고

계속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나를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6개월 임신한 옆팀 선배가 만들어 놓은

여자직원에 대한 네거티브한 평준화를 깨고 싶어

임신했지만 더 열심히 했다.


대부분 리더급 남자선배들의 아내는 주부였기에

임신부 여직원들을 이해하지도

아니 이해하려고도 안 했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임신했다고 뭐 봐달라고 하고
애 낳았다고 맘대로 휴직하는 거
그거 진짜 이기적인 거야

결혼하고 애 낳으라고
회사가 돈 주고 자리 만들어주는 거 아니잖아

여긴 엄연히 조직인데
개인생활사를 회사한테 봐달라고 하는 게
그게 말이 되냐?

너가 잘해야 다른 여자 후배들이
욕 안 먹는 거야
잘해라?


이상하겠지만 100%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그 남자 선배는 정말 진심으로 나를 위해서

쓴소리 하는 말이었고 나도 공감했다.


너무 맞는 말이긴 한데

이상하게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하는 느낌?


나는 결혼 안 할 거고 임신 안 할 거라고 약속하고

회사를 취직한 게 아니다.

그리고 나를 뽑아서 회사에서 일해달라고 한 것도

회사였다.


내 인생은 버리고 회사에 몸 바치라는 건데

그럼.. 남자직원들은 그렇게 살고 있는가?

남자 선배들 모두 결혼하고 아이들도 있지만

단순히 몸이 남성이기 때문에

임신 출산과정이 없기에 겉으로 보기에

‘회사에 몸 바쳐 일하는’것처럼 일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괜히 짜증 나고 억울했다.

누구보다도 책임감있게 일을 해왔는데

임신한게 마치 무책임한 짓을 한 것 같았다.


그래도 나의 출산으로 생길 나의 공백을

누군가는 더 일해서 메꿔야 하는 건 사실이었기에

출산하기 전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최대한 공백을 줄이기 위해

양수 터질 때까지 일해야지 마음을 먹었다.


임신 후기로 갈수록 일은 더 쏟아졌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데 매일 혼자 야근하고 있었고

솔직히 너무 힘들어졌다.

장시간 앉아 있다 보니 온몸이 땡땡부었고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태교는커녕 속으로 계속 욕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임신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기에

이렇게 막달이 되어 갈수록 힘든 줄 몰랐다..

결국 예정일을 한 달 조금 안되게 남긴 채

3개월 출산휴가를 들어갔고 1년의 육아휴직을

미련 없이 다 쓰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염치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몇몇 남자 선배들은 새 생명이 곧 태어나는데

이깟 일이 뭐가 중요하냐며

무조건 축하할 일이니

회사는 걱정 말고 몸조리 잘하라고

감사하게 격려도 많이 해주었다.


태어날 아기와 둘에서 셋이 되는 설렘도 컸지만

매일같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회사를 쉰다는 것도

상상이 가질 않는 일이었다.

다른 여자 선배들처럼 커리어 생각해서

승진도 한 다음에 좀 계획해서 아이를 가졌어야 되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 자리를 비워둔다는 거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도 공존했다.


워킹맘이 뭔지도 몰랐지만

워킹맘들도 아니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치열하게 살면서 사회에서 인정받고

몸 담고 있는 조직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불이익받기 싫으면 애를 낳지 말라고?


아니,

우리 워킹맘들은 맘이기 전에 똑같이

열심히 사회생활한 사람들이다.

미래의 후배 워킹맘들을 위해서라도

임신과 출산이라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이 고귀한 숙명을 따르면서도 인생은 계속되듯이

그 누구보다도 나라와 사회 또 조직에

책임을 다하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이 사회에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임신 후의 삶에 대해서

한 치 앞도 모르는 예비 워킹맘들이 주위에 있다면

생명의 고귀함을 뱃속에 품고 일하는 그들에게

정말 대단하다고 멋지다고

따뜻하게 격려해줬으면 한다.


그들도 다른 욕심이 있고 이기적인게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걸 뛰어 넘어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 또한

성실히 하는것 뿐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엄마’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인정을 받아야

그 엄마의 자식들인 우리 모두의 삶 또한

정당성을 얻는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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