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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바라기 Oct 17. 2023

6. 첫번째 수술

뼈에 암이 생긴 이상 수술은 불가피했다.


암으로 변형된 뼈를 절단하고 인공뼈를 심어야 했다. 미국 의사들도 설명해줬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 의사들의 수술계획은 좀 달랐다. 분명 수술하고 나면 원래의 나처럼 뛸 수도 있고 하이힐도 신을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한국 의료진들의 판단은 달랐다.


수술 전 여러 검사 결과, 암 크기를 줄이기 위해 항암을 먼저 몇 달 했음에도 불구하고 암세포가 무릎뼈 깊숙이와 넓적다리까지 퍼져있는 걸 확인했다. 주치의는 일단 ‘다리 절단’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고 다리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수술해 보겠다고 했다.


한쪽 다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 너무 슬펐다. 코끼리 다리처럼 커진 한쪽 다리로 다닌 지 반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내 다리가 있어서 좋았는데.. 발부터 골반밑까지 통깁스로 꽁꽁 싸매인 채 몇 개월.. 암이 퍼져 부풀어 오른 무릎 말곤 걷지 못한 시간이 길어져 앙상하게 메말라 버린 종아리와 허벅지는 피부마저 모두 죽은 피부처럼 말라비틀어졌다. 아픈 다리 때문에 너무 고생한 걸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잘라버리고 다시 내 삶을 되찾고 싶었지만, 주인 잘못 만나 고생만 한 것 같아 예뻤던 내 다리를 그리워하며 펑펑 울었다. 더 많이 뛰어볼걸.. 더 많이 달려볼걸.. 예쁜 옷도 더 많이 입어볼걸..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간절히 기도했다. 수술 후 다시 내 발가락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걱정하며 떨고 있을 내가 걱정되었는지 레지던트가 수술전날 밤에 내 병실에 찾아왔다. 보통 활짝 웃으면서 들어오는데 이날은 입술에 힘을 준채 들어왔다.


“최선을 다할게. 너무 걱정 말고 푹 자”


진심이 와닿아 마음이 더 아팠다. 간절한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어 줘서 고마웠지만 그들 마음에 큰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했다.


수술 당일 아침


수술 준비에 의료진들이 분주했다. 지켜보기만 해야 되는 부모님도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애써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이제 수술만 하면 훨씬 나아질 거고 아주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걸 이제 하나님께 맡겼다.


얇은 수술가운만 입고 이동식 침대에 앉아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엄마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괜찮다고 하던 아빠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눈이 빨개지면서 흐르던 아빠의 눈물을 보니 가슴이 찢어졌다. 보호자와 격리되어 출입문이 닫히자마자 부모님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담담한 척했지만 17살밖에 안 됐던 나는 무서웠고 슬펐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이 수술실에서 아니 이 모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분명 잘 지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수술실에 벌거벗겨져 있는 내 모습에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소용돌이치던 내 마음은 수도 없이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수술실에 들어와 뼛속까지 느껴지는 차갑고 딱딱한 수술침대에 눕자 금세 잔잔해졌다. 각종 망치(?) 도구들과 드릴들이 진열되어 있는 수술방은 마치 도살장 아님 공사장 같이 살벌하게만 느껴졌다.


차갑게 차분해진 마음으로 전신마취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기도했다. ‘부디 부모님 마음에 평안을 달라고..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게 지켜달라고.. 결과가 어떻든 간에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해 달라고.. 모든 수술의 시작과 끝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눈을 감았다.  


조용했던 주위가 시끌시끌해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간호사가 “정신 드세요?”라고 물었던 것 같고 어디론가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수술이 끝났나 보다..


최대 5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던 수술은 10시간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마취가 아직 다 안 깼는지 다리에 아직 감각이 없는 채로 병실로 이송되었다. 병실에서는 엄마, 아빠, 이모가 기다리고 있었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엄마 아빠는 눈 뜨고 들어오는 날 보고 긴장이 풀리신 듯 보였다.


수술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수술이 시작되고 얼마 안돼서 엄마에게 수술진들이 전화를 해 생각한 것보다 다리를 열어보니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했다고 한다. 그 뒤로 몇 시간 뒤에 다시 전화가 왔고 전화 너머로 들리는 시끄러운 드릴소리와 망치 소리에 엄마는 너무 놀랬다고 한다. 마치 공사현장 같은 소음에 전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의료진은 소리 지르듯 전화를 했고 모든 게 엄마는 너무나 끔찍했다고 했다.


다행히 다리를 자르진 않았다. 엄마는 살아서 돌아온 내 발가락을 만지며 고맙다고 했고 그저 숨 쉬며 돌아온 딸을 다시 볼 수 있어 아빠는 눈물을 훔쳤다. 생각보다 길어진 수술에 피를 많이 흘려 수혈도 몇 팩을 할 정도로 대수술을 끝냈다.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레지던트가 병실을 찾아왔다. 긴 수술에 굉장히 지쳐 보였던 그는 내 상태가 정말 안 좋았는데 다리를 살려야 된다는 간절함으로 고군분투하여 간신히 다리를 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마취가 슬슬 풀리자 극심한 통증이 올라왔다. 허벅지에는 수술부위에 피가 고이지 않게 피주머니가 호스로 연결되어 있었고 당분간은 꼼짝없이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어야 했다. 허벅지 옆을 거의 대부분과 무릎 아래까지 약 50센티 정도 쨌고 수술부위가 잘 아물 수 있게 벽만 보고 있어야 했다. 벽과 얼굴 사이 거리는 20센티 남짓으로 공황장애가 올 것 같았다. 통증으로 온몸에 식은땀이 나는 데다가 벽만 가까이 보고 있으니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술은 예상보다 끔찍했다. 넙적 다리뼈의 80%와 무릎뼈 전부다 그리고 종아리뼈 10% 정도를 모두 절단했고 큰 인공뼈를 심었다. 뼈만 절단해서는 불안해서 허벅지와 무릎 주변에 있던 근육들도 모두 제거했다고 했다. 근육이 없어 당연히 뛸 수도 없었고 간신히 걸을 수 있는 정도로만 수술이 된 것이다.


같은 병동에 비슷한 나이 또래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안타갑게도 한쪽 다리를 절단했다. 나에게 수술이 잘 됐다며 너무 다행이라고 자기처럼 다리를 절단하지 않아서 너무 부럽다고 하며 이제 앞으로 치료만 잘 받으면 되니까 힘내자고 나를 오히려 응원해 줬다. 그래..감사해야지 하면서도 이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슬펐다. 온전한 나의 다리는 이제 영영 없는 것이었다.  


또 다른 병실에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원한 사십대 아저씨가 있었다. 보통 골육종은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흔히 발생하는데 40대는 보기 드물었다. 아저씨는 아주 초기상태에 발견이 돼서 뼈만 절단했고 무릎캡과 근육들도 제거하지 않았다. 덕분에 스스로 다리를 움직이는데 큰 어려움이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야만 한다는 억울함에 항상 화가 나 있으셨다. 40대 한창인 나이에 이렇게 누워있어야한다는게 너무 화가 난다고 하셨지만 난 나보다 수술경과가 좋은 아저씨가 부럽기만 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같은 상황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처한 상황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감사해야 돼!라고 강요하는 것도 지나친 오지랖에 무례한 요구이다. 그 누가 어떤 권리로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가 처한 상황을 수용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나한테 결국 좋은 결정이기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현실이 나에겐 결국 최선이라고 생각을 안 하면 어쩌겠는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바뀌면 좋겠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는 시간조차 낭비이다. 언제까지 내가 살아있을지 모르기에 행복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나도 그랬지만 사람은 자기가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영원히 살 것 같기 때문에 고민이 많고 걱정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막상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 걱정은 하나마나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숨 쉬고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 이게 너무 소중해서 이 고난의 시간들마저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 실패와 고난을 피하고 싶지만 결코 그 여정 가운데 피해 갈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그 굴곡들이 있기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우리의 눈물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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