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바라기 Dec 20. 2023

7. 인생 두번째 걸음마

다 커서 걸음마를 다시 할 줄이야..


나는 수술후 다시 아기때처럼 걸음마 연습했다. 거의 일년만에 다시 걷는거라 그전 걸음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걸음마 하기 전 아기들 발바닥을 보면 볼록하고 말랑말랑하다. 내 왼쪽 발도 마치 안 걸어본 발 마냥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왼발을 땅바닥에 닿자 마자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될날이 오지 않을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다시 땅을 디딜수 있다는거에 너무 감격했다. 소중했던 일상이 더이상 나한테 허락되지 않을것 같던 절망스러웠던 지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순간을 얼마나 꿈꿨는지..


막상 목발을 딛고 일어서자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어지러웠다. 너무 오랫동안 눕고 앉아서만 지냈더니 잠깐 서있는것도 몸은 적응을 해야됐다. 예상외로 재활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니 하면 안된다고 했기에 그냥 조금씩 천천히 상처가 다 아물때까지는 살살 걸어 보았다.


걸음마 걸음마..

걷는것만 걸음마가 필요한게 아니였다. 몇분씩 서있는것부터 다리 굽히는 법, 발목 돌리는 법 등 하나씩 하나씩 다시 천천히 시작했다. 그동안 답답하게 어떻게 참고 지냈나 싶을 정도로 나름 자유로운 다리 움직임에 눈물나게 감사했다..


아직 상처가 완전히 아물은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답답했던 깁스에서의 자유함과 통증으로부터의 자유함에 잘 걷지도 못하면서 날아가는 듯한 기쁨이 가득했다.


‘아 여기 윗 공기가 이렇게도 상쾌했나..’


마시는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지고 중력이 이렇게 강했나 싶을정도로 몸을 일자로 서있는게 영 어색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어색함도 잠시..

난 곧 목발을 짚고 한 다리로 뛰어다닐정도로 날아다녔다. 상처가 조금 아물자 활동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듯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다.


우리나라는 아직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시설들이 대부분이다. 어디를 가다보면 반드시 턱이 있고, 좁고, 엘레베이터가 없고, 오르막내리막 길이 없고, 계단만 있고 등등 난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렇지만 이제 목발로 다닐 수 있게 되니 뭐 닭장에만 갇혀있던 닭마냥 자유함에 그저 행복했다


대신 이제는 넘어지면 안되었다.

다치면 부러지면 아물수 있는 보통의 뼈가 아니였기에 다치게 되면 무조건 수술이였다.


“평생 써야 되니까 공주처럼 지내고 아껴서 써야되!”


수술해주신 교수님의 당부였다.


다리가 잘 아물때까지 항암치료를 잠시 중단한 덕분에 민머리에 다시 고슴도치처럼 까만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고 몸에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 억눌렸던 마음도 다시 조금씩 용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치료만 잘 받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꺼야. 그럼 다시 미국 학교에 복학하고 다시 잘 지내면 되겠지..‘


한개의 고비를 잘 넘겼으니 좀만 힘을 내면 되!!!

매거진의 이전글 6. 첫번째 수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