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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바라기 Jan 08. 2024

8.다시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응원하고 북돋았다.

매일 어느 때처럼 친구들과 캠퍼스를 뛰어다니며 깔깔거리며 행복하는 꿈을 종종 꾸곤 했다.  


치료를 잘 마치고 돌아오라고 했던 미국 고등학교 교장의 편지를 기억하며.. 기다리고 있는 많은 친구들의 응원을 기억하며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되었다. 다시 원래 학년으로 복학하기 위해 치료받는 동안 미국학교에서 지정해 준 홈스쿨링을 혼자 꾸준히 했다. 매일 퀴즈와 에세이, 숙제, 시험, 리서치 페이퍼 등등 모든 걸 혼자 해야 되니 버겁긴 했지만, 어쩌면 정해진 학업 스케줄을 따라가느라 길게 느껴지는 치료 기간을 그래도 수월하게 흘려보낸 것 같다.


홈스쿨링의 꽤나 탄탄한 과정이어서 심심할 틈이 없었다. Bio 수업으로 개구리 해부를 하고 사진을 찍어서 리포트를 작성해야 되는 과제가 있었는데, 개구리가 직접 진공포장된 채로 집으로 배송되었다!! 온갖 냄새가 나는 개구리를 뜯어서 신문지 위에 놓고 베란다에서 배를 가르던 기억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길게는 일주일씩 입원해서 약물투여를 해야 돼서 교과서들을 병실에 쌓아놓고 숙제를 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홈스쿨링이 한국에서는 생소하다 보니 병실에 들어와 공부하고 있는 내 모습을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복학을 생각하자니.. 아직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퉁퉁 부은 얼굴과 절뚝거리는 다리와 민머리에 눈썹 한 개 없는 내 모습이 낯설고 다시 원래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함이 있었지만 그저 시간이 흘러가길 버텼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더라. 끝이 안보일 것 같던 치료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모든 치료가 끝나면 의료진들은 일상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해주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말렸고 부모님께 한소리씩 해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애를 다시 사지로 모냐’부터 ‘요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애를 혼자 어떻게 보내냐’ 등등 주위의 염려 가득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엄마는 같이 카페 하나 차려서 한국에서 살자며 걱정을 뒤로 감춘 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내 나이 17살

포기하기에는 너무 일렀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한국 고등학교로 전학 가는 건.. 정말이지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한국 교과과정을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한국 고등학교를 간다는 건 미국으로의 복학보다도 막막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되는 한국 학교 시설과 그때 당시 여학생들은 교복치마만 입었는데 흉터를 고스란히 노출해야 되는 것도 심적 부담감이 컸다.


부모님은 검정고시를 보고 한국 대학을 가는 것도 좋다고 했지만,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병실에 갇혀 그토록 염원하던 빛나는 학창 시절을 다시 보내고 싶었다. 다시 친구들과 까르르 웃고 싶었고 다시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하고 싶었다. 오로지 그 희망만으로 고통스러운 치료와 수술을 버텼기에 나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대답은 차가운 반응을 넘어 시니컬한 대답이었다. 치료는 끝났지만 언제든 다시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받아줄 수 없다는 답이었다.


재발? 이제 겨우 치료가 다 끝난 나한테
재발할 것 같다고..?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언제든 치료가 끝나면 돌아와라’, ‘너의 자리는 항상 남아 있으니 얼른 힘을 내서 곧 보자’ 라더니.. 막상 복학하겠다고 하니 나를 걱정하는 듯한 포장으로 오지 말아 달라는 속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제 막 치료가 끝난 사람한테 의사도 아닌 사람이 재발 가능성이 있으니 받아줄 수 없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희망을 가지고 버텼던 세월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했다. 나 혼자 착각하고 꿈을 꿨던 것인가..


내가 잘 버티고 회복해서 돌아가는 게 학교에도 큰 용기를 주는 거라고 말해줬었는데.. 다 거짓이었다.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게도 그들의 말들을 다 믿었나 보다. 백인 특유의 콧대 높은 태도와 소름 끼치게 이기적이며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그들의 뱀 같은 말들을 내가 한심하게도 잊어버렸었다보다. 응원은커녕 난 기껏 아시아 학생 받아줬는데 암에 걸려 학교에 민폐를 끼친 그저 기피대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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